헌법재판소가 어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딸 이윤재 씨가 한일(韓日)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의 위헌 여부를 물은 헌법소원 사건에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1965년 청구권협정 체결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와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권과 청구권에 관한 모든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협정의 위헌 여부가 이 씨가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합헌이냐, 위헌이냐 자체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합헌이든 위헌이든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후폭풍이 만만찮았을 사안에 대해 헌재가 무리한 해석을 차단하는 절충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2007년 제정된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국가가 미수금 1165만여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자 행정소송과 함께 헌소를 냈다. 한일 청구권협정이 일본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제한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이었다. 헌재는 이 지원법에 대해서는 재판관 의견 6 대 3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미수금 지원금은 보상금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시혜적 성격의 급여”라며 지원금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달리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서 한일 양국이 ‘해결한 것으로 합의한 사항’에 명시적으로 포함된 사안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완결된 사안이라고 본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개인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사안이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한일 청구권협정과 같은 국가 간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일본이 저지른 강제동원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에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면 한일 간 또 하나의 외교적 악재가 됐을지 모를 일이다.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국가 간 협정이나 외교문제에는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사법자제의 원리와 헌재 판단이 이번 결정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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