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친박정권, 노무현시대 닮아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5일 03시 00분


박성원 부국장
박성원 부국장
진박(眞朴) 감별사라니! 병아리 감별사나 보석 감별사는 봤어도 진짜 친박(친박근혜)과 가짜 친박을 가려내는 감별사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19일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의 총선 출정식에서 “누가 진실한 사람(진박)인지 헷갈리실 테지만, ‘조’가 (지지하러) 가는 후보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축사를 한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 얘기다. 그런 조 의원에게도 대통령민원비서관실 소속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방문 때마다 밀착 보좌했던 남호균 전 행정관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해적 친박 마케팅 모르나

대구 동을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도전장을 낸 이 전 구청장이 언제부터 친박(또는 진박)인지는 모르겠다. 그의 선거 출정식에 친박 의원들이 몰려가 “이분이야말로 진짜 진실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목적은 딱 하나다. 박 대통령에게 “그게 아니고요!”라고 했다가 ‘배신의 정치’로 찍혀 사퇴당한 전 원내대표 유승민을 찍어내기 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호위무사들을 상찬하듯 22일 또 한 번 “진실한 사람이란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친절히 밑줄을 그어주었다.

1971년 대선 때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당시엔 경북)에서 얻은 득표율은 75.6%였다. 2012년 대선 당시 이곳에서 박근혜 후보는 80.1%를 얻었다. 부친을 포함해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막강한 지역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힘이 대구·경북을 휩쓰는 ‘친박 마케팅’의 원천이다.

하지만 친박 마케팅이 전국적 효험을 얼마나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안철수 신당의 출현으로 중도와 중도보수 일각이 새누리당에서 이탈하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려오는데도 청와대와 친박들은 ‘혁신보수’ ‘개혁보수’ 이미지로 당의 왼쪽 귀퉁이를 떠받쳐온 유승민류를 찍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정작 박근혜표 ‘진실한 사람’의 한 명이라는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총선 예비후보 출마선언문에서 ‘용감한 도전’ 운운하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연설문을 그대로 본뜬 듯한 표현을 사용한 것도 아이러니다.

친박 핵심이라는 홍문종 의원은 득표력 있는 유력 인사들을 영남이나 서울 강남이 아닌 ‘험지’에 출마시켜야 한다는 당내 요구에 “김황식 전 총리, 안대희 전 대법관,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인큐베이터에 넣어 잘 키워야 한다”고 발끈했다. 그러면서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험지로 가도 괜찮다”고 했다. 친박 인사들은 낙선 가능성이 없는 안방지역에 꽂아 넣어 반드시 당선시켜야 하지만 ‘친박 패밀리’로 볼 수 없는 사람은 험지에 가서 떨어지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소리로 들린다.
분열의 정치 키우는 당동벌이

제1야당의 권력을 꿰찬 문재인 대표와 친노·강경파 역시 다르지 않다. 안철수 의원과 비노(비노무현) 의원들이 줄줄이 당을 떠나는데도 변화를 통해 당의 외연을 넓히기는커녕 자신들만의 똬리를 뜬 채 문을 안으로 닫아걸었다. 오죽하면 문 대표의 ‘지도교수’ 같은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까지 “온라인 입당 열풍에 자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일갈했겠나.

편 가르기와 뺄셈의 정치, 진영논리에 빠져 정치·사회적 갈등을 키웠던 노무현 정권 당시의 풍경을 2004년 말 교수신문은 ‘당동벌이(黨同伐異·패를 지어 상대를 배척함)’로 묘사했다. 오늘의 여당 권력에서도, 야당 권력에서도 10여 년 전 권력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비극인가, 희극인가. 이런 여야가 내년 총선에서 만들어낼 20대 국회는 또 얼마나 분열과 정쟁으로 얼룩질 것인가.

박성원 부국장 swpark@donga.com
#친박#노무현#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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