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약해서, 민족의 수난이 계속돼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만행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29일 외교부 제1, 2차관을 만난 할머니들은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한 우리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을 보자마자 “어디(어느 나라) 외교부예요?”라고 물어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이용수 할머니(87)는 “(우리는) 엄연한 조선의 딸이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라며 화를 내고야 말았다. 김복동 할머니(89)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공식으로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 바람”이라며 “돈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정부가…”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정복수(100) 김군자(90) 박옥선(92) 이옥선(89) 유희남(88) 강일출 할머니(88) 등 6명과 마주 앉은 조태열 외교부 2차관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냉담한 할머니들 앞에서 조 차관은 “할머님의 용기 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일본이 할머니들뿐 아니라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사과를 했기 때문에 이 이상 명예 회복은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정부가 어떻게 함부로 합의합니까. 우리는 인정 못 해요. 개인적으로 배상 받고, 공식 사과 받게 해 주세요.”(김군자 할머니)
“할머니들 몰래 합의를 한 것은 우리를 울리고 정부가 우리 위안부를 팔아먹은 것과 같아요.”(이옥선 할머니)
50여 분간 이어진 면담은 오후 3시 20분경 끝났다. 조 차관은 “송구스럽다. 합의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마음으로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일어섰다. 돌아서서 나오는 조 차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할머니들 역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박 대통령, 할머니들 직접 위로할까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수사로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 온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상처를 위로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단지 한일간 외교적인 해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희생된 개인의 삶을 보듬을 수 있어야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본이 진정성을 갖고 합의를 이행한다면 후속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일 관계는 이제 시작”이라며 “일본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합의가 이뤄졌다. 일본도 감성적인 이벤트를 검토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본의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박 대통령의 나눔의 집 방문이나 메시지 전달이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강조한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위안부 할머니와의 만남을 검토했다고 한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외교관계를 고려해 협상 타결이 된 다음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참모들의 건의에 따라 만남을 미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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