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해온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오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이 어제 공식 발표했다. 오늘 치러지는 국장(國葬)의 장의위원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맡았다. 장의위원회 명단엔 두 달 전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최룡해가 서열 6위로 이름을 올려 복권이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다녀간 북의 핵심 실세 3명 중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건재하지만 김양건은 운명을 달리했고 최룡해는 기복이 심해 북한의 불가측성을 보여준다.
최근 차량이 늘었다고는 하나 교통량이 많지 않은 평양에서, 그것도 동도 안 튼 새벽에 김정은의 최측근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김정일의 최측근이었던 김용순 전 대남비서도 2003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해 그해 10월 숨졌다. 정부는 북 매체가 김양건을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가장 가까운 전우’ 등으로 미화하며 추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볼 때 교통사고를 위장한 숙청의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남 유화파로 알려진 그를 견제하는 강경파가 일을 저질렀을 개연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속단할 일만은 아니다.
김양건은 황병서와 함께 8·25 합의에 서명한 당사자다. 그는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이명박 정부 때도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남북 정상회담을 협의한 적이 있어 나름으론 우리와 대화가 가능했던 협상파로 꼽힌다. 북의 대남정책 기조는 김정은이 정한다고 해도 그 역시 핵심 참모들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다. 앞으로 누가 김양건의 역할을 대신하느냐가 남북관계의 앞날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광복 및 분단 70주년인 올해도 북의 지뢰 도발과 8·25 합의, 이산가족 상봉, 당국 간 회담 재개 및 결렬 등으로 남북관계는 요동을 쳤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어제 북에 조의를 표명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실은 것이다. 북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김정은의 신년사를 지켜봐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을 목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북이 호응하지 않으면 한 발도 나아가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다. 당장은 김양건 사망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북에서 지금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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