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0일 “올해 말까지 등록을 마친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단속도 잠정적으로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희한한 발표를 했다. 국회가 1월 1일 0시까지 선거구 획정을 완료하지 못하면 전국 246개 선거구가 법적으로 무효가 되므로 모든 예비후보는 자격이 박탈돼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선관위의 단속 유보로 예비후보도 선거사무소와 현수막 설치, 명함 배포 같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선관위의 결정은 초법적이지만 십분 이해가 간다. 현역 의원들이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마음껏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예비후보들의 발에만 족쇄를 채우는 것은 정치 신인들에게 불공평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불법선거운동을 단속해야 할 선관위가 단속을 유보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선관위의 위법을 종용하다시피 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19대 국회가 악명이 높은 데는 국회선진화법 탓도 있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이끈 19대 전반기(2012년 7월 2일∼2014년 5월 29일)에는 총 9896건의 접수 법안 중 3951건이 통과돼 39.9%의 법안처리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 의장이 이끈 후반기(2014년 5월 30일∼2015년 12월 30일)에는 총 7166건의 접수 법안 중 2058건이 통과돼 28.7%로 확 떨어졌다.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 지연과 관련해 “12월 31일이 지나면 입법비상사태”라고 말했다. 이 경우 선거구 획정위에 현행 선거법(지역구 246석)대로 획정안 제출을 요구해 직권상정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을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경우와 천재지변, 전시·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85조)에 국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묶여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불가’만 외치지 말고 더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법을 준수하겠다는 정 의장의 소신을 이해하지만 ‘입법비상사태’에 실제로 돌입해야 직권상정을 실행할 수 있다는 건 지나친 형식 논리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 의장은 경제활성화 법안을 비롯한 쟁점 법안에 대해선 ‘입법비상사태가 아니므로 직권상정할 수 없다’는 뜻이 확고하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노조까지 참여해 9월에 합의한 노동개혁 법안을 야당이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작금의 입법 마비상태 역시 ‘입법비상사태’로 보고 있다. 정 의장은 19대 국회의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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