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오른 대기업이 이전보다 대폭 늘어난 가운데 정부는 30일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현황과 향후계획’을 발표하고 한계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채권단 중심의 신용위험평가로 선제적인 기업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취약 업종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가동해 구조조정의 틀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장관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되 그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시장의 의심은 여전하다. 이날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에 대기업 그룹(주채무계열) 계열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총선을 의식해 강도를 낮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은행이 구조조정 잘하는지 당국이 감시
일단 정부는 신용위험평가를 통한 채권단 위주의 구조조정을 계속 밀어붙일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당장 내년 1월에 올해 시중은행들의 신용위험평가와 사후관리가 적정했는지를 외부 전문기관과 함께 들여다보기로 했다. 장부상의 실적 악화를 우려해 은행들이 부실기업 정리를 미루지는 않았는지 현장에서 직접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진웅섭 금감원장도 이날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모아 놓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충당금 적립에 적극 나서라”고 경고했다. 기업 구조조정의 수요가 늘어나면 그만큼 은행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지만 부실기업 정리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조선 해운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채권단만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는 취약 업종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제시하는 한편 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날 정부는 경영난에 빠진 해운사들에 활로를 열어주기 위해 이들이 빚을 내지 않고 선박을 빌려 운항할 수 있도록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반 금융회사들이 50%, 국책 금융기관이 40%, 해운사가 10%를 각각 부담하는 것으로 이 펀드가 돈을 대 선박을 건조하면 해운회사들이 빌려 쓰는 구조다. 다만 이 펀드는 부채비율 400% 이하인 기업에만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이보다 높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이용할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자체적인 정상화 노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자율 협약, 법적 구속력 없어 워크아웃 한계
이처럼 정부가 ‘칼’을 빼들었지만 과연 구조조정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우려가 많다. 일단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31일 일몰을 앞두고 있어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금감원은 해를 넘기기 전에 신속하게 워크아웃을 시작할 수 있도록 채권단을 독려하는 한편 채권금융기관 자율로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을 마련해 기촉법의 빈자리를 메울 방침이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약’만으로 구조조정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연내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위해 기업과 채권단이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기촉법이 사라지면 리스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정치·사회적 파장이 크고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계속 강하게 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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