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새해 첫날을 ‘입법 비상사태’로 맞았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까지 여야가 20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해 어제 0시를 기해 전국 246개 선거구가 법적으로 사라진 초유의 상황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어제 대(對)국민담화를 통해 현행 국회의원 정수 300명과 지역구 국회의원 246명(비례대표 54명), 그리고 선거구 간 인구편차 2 대 1을 기준으로 “1월 5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해 제출해 달라”고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에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신년하례식에선 직권상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니 비상사태를 매듭지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예비후보들은 한마디로 “미치고 팔짝 뛸 심정”이라고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8일도 선거구 획정이 안 될 수 있느냐”는 예비후보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여당은 ‘선(先) 쟁점법안 처리, 후(後) 선거구 획정’으로 연계할 계획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며 여당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후보들의 손발을 묶은 ‘무법(無法) 무능(無能) 무치(無恥)의 직무유기’를 해놓고도 여야 지도부는 신년 행사를 마친 뒤 이미 없어진 자기들 지역구로 향했다니 불공정 게임이 따로 없다.
동아일보 새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4월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찍겠다는 의견(24.4%)보다 새로운 사람에게 투표하겠다는 의견(32.1%)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높게 나왔다. 아직 실체도 안 갖춘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율(18.9%)도 제1 야당인 더민주당(16.3%)을 능가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선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적 역량조차 검증되지도 않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3.3%)이 안철수, 김무성, 문재인을 제치고 압도적 선두에 올랐다.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국민의 ‘물갈이 민심’을 보고도 19대 국회의원들이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말했던 ‘국회 심판론’이 4월 총선에서 위력을 떨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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