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이 말하는 2016 화두]<1>포용과 희생의 리더십을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03시 00분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새해가 밝았다. 각계 지도자들의 신년사는 휘황하지만 왠지 공허하고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내외적 어려움 앞에서 몸을 던져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은혜를 입고 정계를 떠난 사람으로서 정치권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위기의 경제… 리더십은 실종

먼저 제1 야당의 분당 사태로 정치 셈법이 복잡해졌다. 유럽형 다당제로 가는 첫걸음인지, 또다시 이합집산의 전철을 밟을지 알 수 없다. 선거가 코앞인데 타협과 양보를 못 해 선거구 획정에 실패한 국회를 보는 국민 시선은 따갑다. 대통령의 날 선 국회 공격에도 국민은 비판보다 공감을 더 보낸다. 그러니 지나간 사람, 정치 문외한까지 새로운 리더십으로 새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 각오도 준비도 덜 된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질 수도 있겠다.

올해부터 3년 연속 전국 규모의 선거가 있다. 총선(올해), 대선(내년), 지방선거(후년) 등이다. 이 3년 동안 극도의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며 전국을 선거 광풍으로 몰아넣지 않을까. 세계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 우리는 제자리걸음 치며 이 중차대한 3년을 허송세월한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더구나 제2의 외환위기라 할 만큼 지금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 3%를 밑도는 성장률 전망에 부채는 늘고 일자리는 줄고 신성장동력은 찾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책임 있는 리더십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정책은 비전도 일관성도 없어 목표와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 남은 2년 정부의 중점 사항이 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대통령은 발로 뛰는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 정부와 정치권, 노조와 시민단체 눈치를 보며 잔뜩 움츠려 있다.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미래 비전을 상실했다. 사교육비 부담에 중산층은 허리가 휜다. 믿을 만한 전문가도, 시대의 스승도 보이지 않는다.

‘태업 국회’ 서로 네 탓만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비난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낯이 뜨겁다. 여야 간 이견으로 폐기처분될 법안이 수두룩하다. 상대방 탓만 할 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론에 얽매이고 시류에 흔들리니 일하는 국회 모습은 사라졌다.

이번 총선에는 벌써부터 대폭 물갈이설이 파다하다. 그러나 제한된 정보밖에 없는 유권자들이 감정 투표를 하고 물갈이한다고 정치가 바뀌진 않는다. 선거 때마다 50% 넘게 선량들을 바꿔왔지만 정치가 발전하고 국회가 나아졌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대통령도 직선제로 다섯 번, 그것도 여야를 번갈아 바꿨지만 ‘웃고 들어갔다 울고 나오는 청와대’가 돼 버렸다.

독선적-이분법적 정치문화 바꿔야

지금 우리는 빅 데이터와 사물 인터넷에 의한 초연결 사회에 진입했다. 권위주의적 정당 정치와 굼뜨고 책임 안 지는 국회로는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치 구도와 본질은 그냥 둔 채 사람만 바꾼다고 정치가 바뀌겠는가. 독선적 정치 문화와 기득권에 둘러싸인 정치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 획일주의를 통일성으로 혼동하고, 분열과 갈등을 다양성이나 다원화라 착각해선 안 된다. 소수자와 약자 보호가 제 몫 챙기기로 둔갑하고, 계보 파당 놀이 하면서 전체 국민을 들먹인다. ‘동지냐, 적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포용의 정치는 어디에도 없다.

진보, 보수, 개혁, 통합, 정의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신뢰나 호응을 못 얻는 것도 양보와 자기희생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따르라”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리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고 희생하겠다는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21세기가 16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20세기의 미몽에 젖어 있다. 고답적 지휘관은 있어도 민주적 리더십은 없다.

지난 시대엔 그래도 YS(김영삼)와 DJ(김대중) 같은 영웅적 리더라도 있었다. YS는 죽음을 무릅쓴 단식을 했고 DJ는 사형선고를 두 번이나 받았다. 지도자는 거저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희생이 없는 지도자는 난국을 타개할 수도, 시대를 책임질 수도 없다. 민주 과잉의 시대일수록 지도자는 국민에게 감동을 서비스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위한 희생, 대의를 위해 오늘 죽는다면 먼 내일 분명 다시 살아날 것이다. 비전과 소통 능력, 열린 마음과 포용력을 갖고서 말이다. 4월 총선에서 이런 지도자를 만난다면 내년 대선이 그나마 덜 불안할 것 같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제1 야당#20대 총선#빅 데이터#사물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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