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수소폭탄 실험을 지시하기 4일 전인 지난해 12월 11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 남측 대표단이 기조연설에서 “핵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하자 북측 대표단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벌떡 일어섰다. “핵은 여기서 남조선과 논의할 게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하겠다”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 하루 전인 10일 북한은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어 1일 신년사에서 “남조선 당국은 (8·25)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의 합의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수소폭탄 실험을 지시해 놓은 김정은이 ‘핵 문제는 한국과 얘기할 일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틀지 말라’고 요구한 셈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생일인 8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를 결정했다.
○ 김정은 생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을 맞상대하려는 김정은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 단숨에 남북 간 구도에 들어온 셈이다.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생일에 축포를 쏘려던 김정은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모독이자 체제 위협으로 여기는 확성기 방송을 맞닥뜨리게 됐다. 김정은이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높이는 초강경 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확성기에 대한 조준 타격을 위협하고 포격 도발까지 벌였던 군사적 공세를 다시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난해 8월 도발 국면 때처럼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군사적 공격 위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적 긴장을 지속할 물자가 부족한 김정은으로서는 준전시상태 등 강대강(强對强) 구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다 8·25 접촉 때처럼 전격적으로 대화를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핵개발은 ‘자위적 권리’라고 주장하는 김정은이 대화 대신 군사적 공격 등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북, 수소폭탄 실험 26차례 방송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유성옥 원장은 “북한이 6일 핵실험 뒤 발표한 공화국 정부 성명에 김정은의 핵전략이 모두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성명에서 지금까지 개발한 핵무기를 가진 핵보유국으로 미국이 인정해주면 더는 핵을 개발하지 않는 모라토리엄(유예)을 할 수 있으니 북-미 직접 대화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체제 보장 대가를 내놓으라는 것. 이를 안 들어주면 핵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위협이다.
7일자 노동신문에서도 이런 속셈이 드러났다. 6개 면 중 5개 면을 수소폭탄 내용으로 채운 이 신문은 “(핵실험으로)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종말을 고했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KN-08 사진을 실었다. 그러면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관철하겠다”고 거듭 주장했다. 북한 방송들은 6일 핵실험 이후 7일 오전까지 수소폭탄 실험 성명을 26차례나 반복했다.
노동신문은 또 “지금까지 미국의 핵위협 공갈을 받는 우리나라를 그 어느 나라도 구원해주려고 하지 않아 정의의 수소탄을 틀어쥐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1일 신년사에서 “외세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내세운 신조어 “자강력 제일주의”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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