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년이 더 된 1995년 6월, 나는 처음 접한 열대기후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문을 열면 훅 하고 열기를 끼얹는 습식 사우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그런 날씨였다. 그 속에서 회담 대표들이 언제 나올까, ‘뻗치기’를 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열린 이른바 ‘준(準)고위급 회담’. 당시 외무부(현 외교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취재차 출장을 갔다.
회담 쟁점은 북한에 제공할 원자로의 노형(爐型) 결정 문제. 그 전해 전쟁 위기까지 치닫게 했던 북한 핵문제는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기본 합의로 해소되는 듯했다. 북한이 핵 활동을 중지하고 사찰을 받는 대신 경수로(輕水爐)를 제공받는다는 것이 합의의 요지. 문제는 북한이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일주일을 예상하고 떠났던 출장은 무려 한 달이나 끌었다. 북한은 결국 한국형 경수로를 받았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느껴졌다.
‘기대 섞인 착각’ 북핵 능력 키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도, 정부도, 회담 상대였던 미국도, 국제사회도 모두 착각했다. 북한은 1987년 영변에 핵발전소를 가동했을 때부터 ‘수소탄 시험’이라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아니 꿈에라도 핵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란 우리의 ‘기대 섞인 착각’이 오히려 핵능력을 키워줬다. 그때만 해도 북의 핵능력은 핵무기 한두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는 ‘의혹’ 수준이었다. 이제는 북한 주장대로 수폭, 아니면 원폭과 수폭의 중간단계인 증폭핵분열탄 같은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가 됐다.
이번 4차 실험에서 북한은 지난 세 차례 실험과 달리 핵무기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생략했다. 북한은 1차(2006년 10월) 2차(2009년 5월) 3차(2013년 2월) 실험을 하기 1∼3개월 전에 모두 장거리미사일을 쐈다. 그러나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았을지언정 운반수단 실험을 포기한 건 아니다. 더 치명적 운반수단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사출 실험을 했다. 그것도 지난해에만 5, 11, 12월 세 차례나 했다. 세 번째는 4차 핵실험을 실시하기 불과 16일 전이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SLBM은 ‘궁극의 핵무기’로 불린다. 잠수함에서 쏘기에 사전탐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적의 공격으로 지상 핵무기가 파괴돼도 ‘2격(Second Strike)’을 가할 수 있기에 상대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최상의 억제력을 갖고 있다.
‘궁극의 핵무기’가 北 최종목표
이른바 ‘수소탄 시험’을 앞두고 연달아 SLBM 사출 실험을 한 북한의 의도는 자명하다. SLBM에 수소탄을 장착한 궁극의 핵무기를 갖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발표하면서 ‘소형화한 수소탄’을 유난히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5대 핵 강국은 모두 수폭과 SLBM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SLBM으로 1만 km 이상 날아가는 대륙간탄도탄을 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 중, 러 3국 정도다.
결국 북한 핵개발의 전략적 최종 목표는 SLBM에 소형화한 수폭을 장착해 1만 km 이상 날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 것이다. 북한에 과연 그런 날이 올까? 20여 년간 우리는 이 질문을 하면서 매번 ‘그런 날’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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