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19대 국회 3년 7개월간 악순환의 사이클 속에서 허덕대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정치 탁류(濁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
초선인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61·서울 서초갑·사진)은 “(100점 기준으로) 과락 수준인 60점”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는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 동안 ‘솔직히’라는 단어를 17번이나 사용했다.
“원래 정치에 뜻이 없었다”는 그는 총선 20여 일을 앞두고 ‘전략공천’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나름대로 △사심 없는 정치인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 △낮은 곳을 향하는 정치인 등 3가지를 소명으로 내걸었지만 “부끄러운 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사심 없이 입바른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늘 주변을 의식했다고 한다. “고생해서 공천을 받은 사람도 아닌데 주민들이 ‘튀려고 하는구나’라고 하지 않을까 스스로 위축이 됐습니다.”
검찰 간부 출신인 그는 2년 전 친정인 검찰을 의식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설특검법(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특검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상설특검법은 임명 절차 등으로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검찰이나 정부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상황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자칫 발언을 하면 저쪽(야당)에 힘이 실릴지도 모르잖아요.”
김 의원을 부끄럽게 하는 법안은 또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적용 대상에 언론인 등 민간인이 포함돼 위헌 요소가 있는데도 의원 총회에서 찬성 발언을 하고 국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지금도 옳은 판단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왜곡된 접대문화를 법률이라는 충격요법으로 바꾸려고 한 겁니다. 그런데 평생 (검찰로서) 법을 한 사람으로서 위헌적 요소가 있는데 지지하라고 찬성 발언을 한 것이…. 아직도 저는 퀘스천 마크(물음표)입니다.”
김 의원은 3년 7개월간 경험한 우리 정치문화에 대해 “거의 질식할 정도로 숨이 막혔다”고 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날(2015년 10월 13일)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정부질문을 할 정도였다. “여야는 완전히 철벽처럼 진영 논리에 갇혔어요. 의원들이 대치해야 막판에 (여야 지도부 협상인) ‘3+3’회동에서 서로 주고받는 ‘딜’을 할 수 있잖아요. (상임위에서) 무슨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입법이 힘들다 보니까 의원들의 입법 기능도 사실상 무효화가 된 겁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제가 어디에 있든 밥값을 할 때 제일 행복했습니다. 국회의원은 너무나 큰 영예였지만 재선을 하면 나도 행복하지 않고 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는 불출마를 언제부터 고민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05년) 검사 옷을 벗을 때는 굉장히 괴롭게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솔직히 어려움이 크게 없었습니다. 진짜!” 김회선 의원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2차장으로 일했고, 현재 19대 초선 의원으로 새누리당 법률지원단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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