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인재 영입’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선거구 실종’ 탓인지 ‘정치 혁신’을 바라는 국민 눈에 쏙 들어오는 인사는 찾기 힘들다. 선진국처럼 청년당원을 정치 지도자로 길러내는 시스템이 전무한 한국에선 총선이 인재 충원의 거의 유일한 통로다. 그렇기에 현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정치 인재 발굴’이라는 정당의 중요한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당장 정치 혁신은 물론이고 향후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의 인재풀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
인재영입의 불을 댕긴 더불어민주당의 첫 여성 영입인사였던 김선현 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교수는 영입 이틀 만에 ‘무효 처리’됐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안철수 의원은 신당 이름을 발표하는 날 영입인사들의 과거 전력이 문제가 되자 무더기 영입 취소와 함께 사과했다. 새누리당은 당 대표가 직접 나서 이른바 ‘젊은 전문가 그룹’ 영입을 발표했지만 주로 ‘방송 패널’ 출신으로 급조한 흔적이 짙었다.
여야가 국민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인재영입에 나섰다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는 ‘정치절벽’ 앞에 선 현 정치권 상황과 무관치 않다. 상향식 공천을 내세운 새누리당은 인재영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야당은 사분오열하면서 정치 신인이 특정 정당을 선택하기 힘든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 ‘홍길동 신세’ 새누리당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새로 영입한 인사 6명을 소개했다. 김 대표가 직접 나선 건 이례적이다. “인재영입 경쟁에서 새누리당이 야당에 밀린다”는 비판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야당의 인재영입은 탈당파 정치인이거나 고관대작 출신, 법조계 인사”라며 “새누리당은 반짝 쇼가 아닌 정치를 바꿀 능력이 있는 인사 위주”라고 자평했다.
이날 소개된 6명은 모두 방송 출연이 잦아 상대적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긴 하다. 또 박상헌 정치평론가를 제외하곤 30, 40대로 젊은층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당 포럼에서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강연을 들은 뒤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전 사무총장과 박 평론가는 이미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어 영입인사로 보기 힘들다. 나머지 4명도 방송에 자주 등장한 변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배승희 변호사는 한 방송에서 수조 원대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과 유승민 의원이 관련된 것처럼 말했다가 유 의원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다.
김 대표는 이런 지적에 “내가 먼저 연락한 게 아니라 이분들이 저한테 연락을 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엄밀한 의미의 인재영입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새누리당은 인재영입을 인재영입이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 신세’가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여러 차례 “상향식 공천과 인재영입은 결이 맞지 않는다”고 밝혀 스스로 말을 뒤집기 힘든 처지다. 이날 영입인사들에 대해서도 “(경선에서) 특혜는 없다”고 못 박았다.
김 대표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했지만 20일 가까이 출마 지역을 정해주지 않으면서 경쟁력 높은 인사들까지 손발을 묶어놓는 패착을 뒀다.
○ 검증 실패로 영입이 부담으로 돌아온 야권
‘여성 인재영입 1호’였던 김 교수 파문은 더민주당 문재인 대표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 많다. 문 대표는 당 인재영입위원장이다. 비록 문 대표가 김 교수를 직접 접촉하진 않았지만 그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더민주당은 지난해 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시작으로 10일 오기형 변호사까지 당 밖 인사 5명을 영입했다. 이는 더민주당 의원들의 ‘살라미 탈당’과 시기가 맞물린다. 당에 필요한 인재를 구한다는 본래 취지보다 소속 의원들의 ‘탈당 충격파’를 상쇄하려는 방어적 영입 성격이 짙다. 영입인사의 문제점을 놓친 것도 시간에 쫓긴 탓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입인사 5명 중 3명을 바로 집으로 돌려보낸 국민의당도 인재영입에 ‘빨간불’이 켜졌다. 8일 영입취소를 밝힌 3명은 모두 탈당파 의원들이 추천한 인사였다. 이를 두고 탈당파 의원들과 안 의원의 기존 측근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국민의당의 성패를 좌우할 인재영입을 놓고 내부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다.
당장 안 의원의 측근들은 “영입인사들이 과연 ‘새 정치’에 걸맞은 인물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반면 탈당파 의원들은 즉각 영입을 취소한 안 의원의 결정에 “국민의당이 폐쇄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창당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인재영입의 기준과 방향이 길을 잃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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