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김정은의 ‘핵 탱고’는 왜 위험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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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급 핵무기 한방이면 서울서 125만명 살상 가능
핵 확산된 ‘제2차 핵 시대’… ‘핵=억지력’ 공식 성립 안해
美蘇 핵 독점 시대보다 더 위험… 북한 핵무기 보유 막지 못하면
비겁한 굴종의 길만 남아… 지금 여기서 기필코 막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과 경영학을 가르치는 폴 브래컨 교수는 ‘제2차 핵 시대’란 책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민 폭격으로 독일인과 일본인 각각 50만 명씩 사망했다. 4년간(1942∼1945년)의 전쟁을 가로축으로 놓고 이 사망자들을 표시해 보자. 이제 그림을 수직으로 세워 이 전쟁이 한나절 만에 치러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하루에 100만 명이 사망하는 것이다.”

kt(킬로톤·TNT 화약 1000t)급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의 위력이 이 정도다. 수소폭탄 같은 Mt(메가톤·TNT 화약 100만 t)급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의 위력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핵폭탄을 개량하는 실험이었다고 해도 그 끔찍함은 마찬가지다.

2004년 미국 환경기구 NRDC의 매슈 매킨지와 토머스 코크런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의 경우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15kt급 핵무기가 지상 500m에서 공중폭발하면 62만 명, 지상 100m면 84만 명, 지면에서 폭발하면 12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핵무기는 사람을 죽이거나 건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은 방사능으로 오염돼 한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핵무기에 대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 핵무기는 실제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억지(deterrence)를 위한,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이 수소폭탄 시험을 했다고 해도 국민들이 좋게 말하면 동요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무감각한 것은 그런 주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보는 관점은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주름잡던 냉전 시기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소련 단둘이 추던 탱고에 중국 영국 프랑스가 끼어들 때까지도 그런 안이한 관점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시대에도 그런 안이한 관점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핵무기에 관한 한 브래컨이 ‘제1차 핵 시대’라고 부른 때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기였다. 핵무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동맹 규칙하에 철저히 관리됐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북한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관리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핵무기에 관한 한 ‘제2차 핵 시대’는 더 불안한 시기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탈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은 훨씬 문제가 많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로의 돌입을 알리는 서막인지 모른다”고 썼다. 이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는 불안한 ‘제2차 핵 시대’ 내에서도 더 불안한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핵 탱고’는 상대방이 예측할 수 있는 스텝을 따르지 않고 혼자 추는 것이어서 더 위험하다. 갓 30세를 넘은 수령이 ‘유일체제’로 지배하는 북한에서 수령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려 할 때 비겁한 졸개들이 그를 제거할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국가의 핵무기는 단순한 억지력이 아니라 실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견해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의 보복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으로 한반도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화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북한 요구에 끌려다니는 비겁한 굴종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중국이란 뒷문이 열려 있는 한 경제 제재로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래전에 증명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경사(傾斜) 외교도 전혀 소득이 없지는 않았는데 중국이란 뒷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상태로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강화한다고 해도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 경제 외교 군사의 구별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봐야 할 시점이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저지에 실패하면 미래는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정은#핵#북핵#핵무기#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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