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임기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다음 날 열린 2013년 2월 12일 국정연설에서는 북한을 직접 거론하며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될 것”이라고 따끔하게 경고 메시지를 준 것과 대비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우선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북한 핵실험으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굳이 국정연설에서 얘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언론에선 북한 핵실험 후 하루 이틀 정도 보도를 했을 뿐 지난 주말 이후 북핵 관련 보도는 자취를 감췄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오전 3시까지 연설원고를 직접 검토했을 정도로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핵이 빠졌을 수도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핵실험으로 미국의 관심을 끌어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려는 속내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어서 일부러 북한을 전략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배경이야 어쨌든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핵 이슈가 외교 현안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은 엄중한 현실이다. 미국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 같은 다소 ‘어정쩡한’ 미국의 자세는 북한의 오판을 초래하고 한반도 핵 위기를 장기화할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시급한 외교 현안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미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테러 배후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는 “남은 임기 동안 외교안보 현안의 최우선 순위(priority number one)가 될 것”이라고 적시했다. 지난해 이란과의 핵협상에 대해서도 “또 다른 전쟁을 막았다”고 자평했다. 중국의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는 “아시아에서 질서를 만드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며 미국 중심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거듭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북핵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현상 유지’를 고수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 대신 중국이 참여하는 국제사회 차원의 중장기적 대북 제재안 마련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은 “연설에서 북핵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IS 격퇴전처럼 북핵 대응도 유엔을 통한 국제 연합을 구성하자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날 연설 직전 미 하원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새로운 대북 제재 법안을 오바마 행정부가 얼마나 이행할지도 관심사다. 이 법안은 북한과 불법으로 거래하는 제3자를 정부가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북한판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넣은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날 국정연설에서도 드러났듯 독자적인 대북 제재 의지가 없다면 의회의 제재 법안이 얼마나 이행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현안 인식에 대체로 낮은 점수를 줬다. 오바마 대통령 바로 뒤에 앉아 연설을 들었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듣기 좋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IS를 분쇄할지 안보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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