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인 A 씨는 일찌감치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경북으로 내려가 표밭갈이가 한창이다. 인지도와 당내 입지 등을 감안할 때 그의 공천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당내 분석이 많다. 정작 그의 관심은 공천이나 당선보다는 그 이후의 상황에 더 쏠려 있다. A 씨는 “당내 경선에 참가해 몸값을 키워 놔야 나중에 공공기관 낙하산 자리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 ‘정피아’에 멍드는 공공기관
선거철을 전후해 ‘정피아(정치권+마피아)’들이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 요직으로 내려가는 현상이 올해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낙하산 인사로 공공기관에 둥지를 틀고 있던 철새 정피아들이 총선을 앞두고 다시 선거판으로 떠났지만 곧 그 자리가 공천에서 떨어진 여권 낙천자와 향후 총선 낙선자로 채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총 313개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한 결과 13일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곳은 모두 14곳(4.5%)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곳(57.1%)은 기관장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1곳(이재인 전 한국보육진흥원장)은 임기 만료 후 출사표를 내 총 9곳의 기관장이 총선 출마에 나섰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공공기관장으로 가서 경영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있고 공공기관에 대한 헌신성을 갖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새 정피아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지역난방공사다. 전임 사장인 김성회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30일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사표를 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다.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 화성을에서 당선된 그는 19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이후 2013년 치러진 10·30 재·보궐선거에서 당시 원외 인사였던 친박계 서청원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했다. 김 전 사장이 자신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지역난방공사로 오게 된 데는 이런 사정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임기 도중 매제와 육군사관학교(36기) 동기를 특혜 채용한 의혹으로 국무조정실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또 인사 규정에 없는 수행 비서를 채용하고 고액 연봉(8500만 원)을 지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4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 지역난방공사는 6개 등급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C등급을 받았다.
박완수 전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뒤 인천공항공사는 최근 수하물 실종 사태로 홍역을 앓았다. 제주 제2공항 설립을 추진하는 한국공항공사도 일부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닥친 상황에서 경영 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인 김석기 사장이 임기를 10개월 남기고 지난해 말 사퇴했기 때문이다. ○ 총선 후 대규모 낙하산 우려
기관장들의 총선 출마로 공석이 된 자리는 다시 낙천·낙선자 달래기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인 남부발전 동서발전 중부발전 등은 지난해 12월 사장 공모를 시작했다. 특히 총선 시즌이 임박해 사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한 공공기업 관계자는 “그간 몇 개월씩 기관장 자리를 비워 뒀던 곳들이 동시다발로 공모를 시작하는 걸 보면 ‘윗선’에서 지침이 내려왔을 것”이라며 “공천을 앞두고 누구를 낙하산으로 보낼지 당정에서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끝낸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야당발 낙하산도 지자체 곳곳에 뿌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8일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하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인 오 전 이사장 취임 당시에도 비전문가를 꽂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서울시 안팎에선 오 전 이사장의 출마로 공석이 된 자리에 또 다른 야당 정치권 인사가 갈 것이란 얘기가 무성하다. 공천과 총선 결과에 따라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는 지자체 산하기관 야권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만 해도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공단 서울시립대 등 서울시에서 내려 보낼 수 있는 자리가 많다”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인데도 정치권 인사들로 채우다 보니 경영상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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