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안보 위기, 경제 위기 상황을 언급하면서 안보 및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국회를 비난했다. 국회라고 지칭했지만 사실은 야당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맞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그 모든 것이 박 대통령 때문”이라는 장문의 반박 담화문을 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서로 손을 맞잡아도 시원찮을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서로 삿대질하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두 사람에게서 자성(自省)은 찾아볼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개인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 여러분이다. 가족과 자식과 미래 후손을 위해 국민 여러분이 앞장서서 나서주시길 부탁한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법안 통과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다. 국민에게 국회를 압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는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하고, 사리사욕이나 당리당략을 버리고 오로지 국민을 보고 국가를 위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언급했던 ‘진실한 사람’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국회가 제대로 국민을 위해서 작동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좋게 보면 국회 심판, 국회의원 물갈이, 국회 개조를 촉구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대 총선을 90일 남겨둔 시점에서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내가 미는 사람’이나 ‘우리 편’을 뽑아달라는 주문으로 비칠 소지가 분명히 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잦은 선거 개입 발언으로 ‘국회 탄핵’까지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은 아무리 사소해도 불법 시비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작년 11월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발언은 결국 TK(대구경북) 물갈이론으로 번졌다. 더구나 국가 최고지도자가 걸핏하면 국회를 원망하는 것은 듣는 국민도 거북하다.
공자는 “정치란 바르게 해주는 일(政者正也)”이라고 했다. 자신을 바르게 해야 남을 바르게 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문 대표도 남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소임(所任)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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