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던 40대 북한 노동자가 새해 첫날 아침 분신자살했다. 유튜브 동영상에는 소방관들이 소화 물질을 분사해도 심하게 그을린 남자가 엎드린 채 꼼짝 않는 모습이 나온다.
그가 남긴 한글 유서에는 “고된 일상에 지쳤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간명한 언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으면 ‘지쳤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을까. ‘남 탓하지 않겠다’는 말에선 혹여 자신 때문에 북에 있는 가족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북한은 1967년 러시아 벌목공 파견을 시작으로 약 17개국에 5만여 명의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 가장 많은 2만여 명이 러시아에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건설 노동자 20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보위부의 감시하에 집단생활을 한다. 하루 12∼16시간씩 일하고 고작 한 달에 하루 이틀 쉰다. 봉급 대부분을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남은 돈도 중간 관리자들에게 상납금으로 떼인다. 월급으로 1000달러를 받으면 달랑 120∼150달러만 손에 쥘 수 있다. 해외파견 노동자라기보다는 노예 같은 삶이다.
이들이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 계좌로 송금하는 돈이 매년 5억∼6억 달러에 이른다. 무기수출, 마약밀매, 남북경협 등으로 연간 3억∼4억 달러를 벌었던 김정일 시대에 비해 5·24 조치로 남북경협 수익이 사라지고 불법거래도 힘들게 되자 김정은 집권 이후 송금 할당액과 해외파견 노동자를 더욱 늘렸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4차 핵실험 직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노예노동으로 핵개발 돈을 대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북한 노동자들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내놓을 대북 제재안에는 북한이 견디기 힘든 조치가 담겨야 한다. 핵개발 돈줄인 해외 노동자 문제는 한국이 노예노동 실태를 유엔·국제노동기구(ILO)·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기하는 식으로 미국이나 중국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는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2년 연속 채택했다. 김정은은 그동안의 국제 제재 중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제재와 ICC 회부 권고결의안을 가장 아프게 여긴다.
한국이 국제사회를 설득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을 돌려보내도록 유도한다면 인권 문제 이슈화와 핵개발 돈줄을 막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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