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발도 각오한 핵실험… 충격 극대화 노려
무책임한 제휴 틈새 파고들어… 한미중 대북정책 균열 커질듯
한동안 군사 긴장은 높겠지만 北, 對南 평화공세 가능성
1월 6일 북한 핵실험에 허를 찔렸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여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사용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5월 초에 노동당 대회를 개최하니 설마 새해 벽두에 핵실험을 강행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핵실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북한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실험을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대로 믿기 어려운데,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왜 이를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발표했을까.
둘째, 핵실험은 비밀리에 계획적으로 실시됐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해 12월 15일에 실시 명령을 내렸고 1월 3일 최종 명령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왠지 김정은은 12월 10일에 이미 수소폭탄 보유를 언급했다. 그 이전부터 실험을 기획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가장 큰 세 번째 특징은 중국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실험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경험하는 두 번째 북한 핵실험임을 감안하면 중국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를 각오한 계획적인 도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특징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김정은이 단호한 결의로 핵실험을 했고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과장까지 해서 충격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점이다.
배경에는 국내 정치 상황과 개인적인 초조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36년 만의 노동당 대회를 굳이 5월에 설정한 것도 김정은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김정은은 핵실험과 당 대회를 잇는 게임 플랜을 마련한 것이다.
중국은 강한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해도 좋을 법한데 예상대로 강경한 제재를 실시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 회담에서 중국이 ①한반도 비핵화 ②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③대화를 통한 해결을 견지하고 있고 “세 가지 원칙은 상호 연관돼 있으며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향후 한미일 간 정책 협의가 진전되면 중국과 한미일 사이의 대북 정책 균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는 또한 주한미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자는 논의로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말로 김정은의 대(對)중국 정책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상황은 미국의 대북 정책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조지 W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는 공갈 외교를 추진해 빌 클린턴 정권 때 멈춰 세워져 있던 북한 원자로를 재가동시켜 버렸다. 게다가 북한이 핵실험을 처음 실시하자 중국에 6자회담을 주재시키고 자신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버렸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관여 정책으로 출발했지만 제2차 핵실험에 직면한 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했다. 중국이 ‘평화와 안정’을 우선시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효과적인 제재를 실시할 책임을 중국에 떠넘긴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중국 중시 정책도 기대에 어긋났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그런 미중의 ‘무책임한 제휴’의 모순을 파고든 것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권의 실패를 최대한 드러내 ‘협상의 불가피성’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실제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임기 중에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목격하게 될 것 같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확대뿐만 아니라 2, 3월에는 해마다 열리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은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5월 초 당 대회에 맞춰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듯하다.
그러나 다소 장기적으로 전망하면 그 이후 북한은 평화 공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그 대상은 미국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될 것이다. 올해 신년사가 이상할 정도로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국 통일은 가장 절박한 민족 최대의 사활적인 과제다”라고 주장한 것이 하나의 실마리다. 북한은 8·25합의와 마찬가지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그 뒤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모색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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