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사절이 항의했다고 정당한 법률 상정을 중단한 것은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국회는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쁜 선례가 될까 우려됩니다.”
2014년부터 법무부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신희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4·사진)는 낮은 톤이지만 단호한 어조로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주한 외교사절들의 항의를 받고 개정안 상정을 중단시킨 것을 두고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고사했던 그는 15일 연구실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것이 19대 국회의 자화상”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2시간 넘게 인터뷰에 응했다.
신 교수는 “이번 일은 자유무역협정(FTA) 원칙의 문제로,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사국 간의 협상을 통해 생긴 권한으로 만든 법인데 상대국에서 이를 문제 삼는다고 스톱한다면 ‘FTA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논리”라며 “외교적 노력의 성과로 만든 개정안에 국회가 제동을 건 것은 스스로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FTA 합의 내용에는 ‘대한민국은 미 합중국 법무회사가 대한민국 법무회사와 합작투자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대한민국은 그 합작투자기업의 의결권 또는 지분비율에 대하여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무부는 이를 바탕으로 합작법인의 외국 로펌 지분 제한 등 조항을 개정안에 넣었다.
외국 로펌들은 그동안 여러 루트를 통해 개정안 자문위원 참여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상대국 이해당사자를 어떻게 우리 개정안 수립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겠느냐. 한국 로펌 관계자가 미국 국내법 개정안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그는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것을 우려했다. ‘힘센’ 주한 외교사절의 말 한마디가 국내 중요 법안 상정을 막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절차에 따라 법안을 만들었음에도 해외 기업이 언제든지 외교사절을 움직여 관련 법안 통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야당 출신 법사위원장의 행보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미 FTA 체결 당시 야당 측은 FTA의 핵심이 아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두고 (주권을 침해한 독소조항이라며) 재협상을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주권행사를 해야 하는 곳에서는 오히려…”라며 어이가 없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신 교수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가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한국 법률시장도 ‘인큐베이팅’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보다 선진국인 독일과 일본도 법률시장을 높은 수준으로 개방했다가 현지 로펌들이 미국, 영국 로펌들에 흡수됐다”며 “FTA에는 역진방지조항(한번 개방하면 되돌릴 수 없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사례를 따라 점진적으로 개방하며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법대와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7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신 교수는 2007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겼다. 국제 법률시장, 국제분쟁 및 조정 전문가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ISD 의장중재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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