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는 고독하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더 고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임기 말로 가면 갈수록….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측근의 얘기.
“임기 초에는 VIP(대통령) 저녁 식사 일정을 조정하는 게 큰일이었다. 저녁을 두 번 드시게 할 수도 없고…. 임기 4년 차가 되면서 그런 고민은 확 줄었다. 점차 VIP가 ‘누구누구 불러라’고 직접 하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딘가 뚱했다. ‘임기 초에는 안 불러 주고, 이제 와서 불러?’ 이런 표정들이었다.” “외로울 틈이 없다”
다른 전직 대통령 측근의 회고.
“임기 후반 총선을 앞두고 ‘각하, 그래도 임기 끝나면 사저에 올 만한 사람 10명은 만드셔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랬더니 VIP가 ‘걱정 마라, 10명 이상은 충분히 온다. 내가 그동안 공천 준 ×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하더라. 정작 임기 끝나고는 단 한 명도 자발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임기 4년 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 여성이자 가족도 없어, 아니 왕래를 끊어 구중심처(九重深處)의 고독은 깊어만 간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은 대체로 할아버지들이었다. 주말이면 청와대를 찾은 손주들의 재롱도 보고, 가족들과 시중 돌아가는 얘기도 나눴다. 어떤 대통령은 비밀리에 청와대로 밴드를 불러 기자들과 여흥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주말은 물론이고 연휴에도 별다른 일정 없이 관저에서 보낸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외롭지 않으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답은 한결같다. “외로울 틈이 없다.” 관저에서도 보고서를 읽고, 인터넷 서핑도 하며, 생각날 때마다 수석비서관과 장관 등에게 전화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고독에 단련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10·26 이후 청와대 문을 나선 1979년 11월부터 정치에 입문한 1997년 12월까지 칩거하면서 절대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결혼을 권유하는 한 인사에게 박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적이 많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를 모두 총격으로 보낸 그의 트라우마가 읽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도 독대를 피하는 편이다. 본인은 ‘만나면 서로 시간 낭비하니 전화가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주변 얘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면접촉 기피가 업무 효율보다는 고독에 인이 박여 굳어진 성격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나는 본다. 편치 않은 상대와 식사하는 걸 꺼려 가끔 TV를 보면서 혼자 저녁을 먹을 때도 있다고 한다. TV 보면서 저녁식사
그럴수록 수족처럼 편한 2인방(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기 어렵다. 3인방 가운데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지근거리에서 멀어졌지만, 정 비서관은 지금도 박 대통령의 바로 옆방을 차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고독을 걱정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남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그가 더욱 고독해지는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자칫 치우친 결정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박 대통령이 경제살리기 법안 입법을 촉구하면서 직접 장외(場外)로 나가 서명을 벌였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는지, 수시로 전문의 상담을 받는 미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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