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기자들을 만난 정의화 국회의장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 의장이 말한 ‘그 친구’는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다. 조 원내수석은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안철수 의원이 창당 중인) 국민의당에서 (영입) 요청이 오면 (참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정 의장의 인터뷰) 보도가 오보이길 바란다”고 했다. 광주 출마설에 이어 국민의당 참여 논란에 휩싸인 정 의장의 ‘정치 행보’를 공격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러자 정 의장은 곧바로 조 원내수석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정 의장은 “내가 늘 강조한 게 보은(報恩)이다”라며 “(의장 선출 시) 당의 은혜를 입었는데 배은망덕한 짓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의장실에선 별도 자료를 내 ‘확인되지 않은 사안으로 의장의 입지를 흔드는 의도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당 출신 의장이 여당 의원에게 ‘공개 경고장’을 날리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 의장과 ‘한 식구’인 새누리당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 의장은 지난해 말부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하게 요구한 경제 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법안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정 의장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못 한다”고 맞섰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아예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 의장의 벽에 가로막혔다. 정 의장은 전날 “(선진화법 개정안의 새누리당 단독 처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22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는 ‘정의화 성토장’이었다. 조 원내수석은 정 의장이 제안한 선진화법 개정 중재안을 두고 “야당이 받을 것으로 생각하느냐”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도 “중간자적 입장에서 조정만 하는 게 (정 의장이 강조한) 의회주의자의 면모가 아니다. 국회법을 충실히 따르는 게 진정한 의회주의자”라고 정 의장의 선진화법 개정안 상정 거부를 비판했다.
2013년 3월 당시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강창희 의장에게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도 야당의 반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국가비상사태 아니냐”며 강 의장의 결단을 요구했으나 결국 거부당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끝에 정부 출범 26일 만에 통과됐다.
강 의장은 2012년 7월 대법관 후보자 4명의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해 달라는 새누리당의 요구도 거부했다. 이 원내대표와 김기현 원내수석(현 울산시장)이 하루에도 6, 7번씩 강 의장을 찾아갔으나 강 의장은 “여야가 더 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의사봉을 잡지 않았다.
의장이 야당과 마찰을 빚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강 의장이 2013년 11월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상정해 새누리당이 단독 처리하자 야당은 강 의장에 대한 사퇴촉구 결의안을 냈다. 야당이 의장의 사퇴촉구 결의안을 낸 건 헌정사에서 22번이나 된다.
‘의장 수난사’가 무한 반복되는 것은 여야의 협상력 부재 탓이 크다. 하지만 의장직을 정치 은퇴무대로 삼는 의장이 가급적 ‘악역’을 맡지 않으려는 행태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 의장은 20대 총선 출마나 대권 의지 등에 확실히 선을 긋지 않으면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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