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 국제노동기구(ILO) 의장까지 지낸 그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2004년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정통 외교 관료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첫 사례였다. 정 전 의원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년간 해외에서 살다가 갑작스럽게 당에서 차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비례대표가 낯설 정도로 정치에는 백지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막상 국회의원으로 일해 보니 외교관의 역량이 발휘될 곳은 많아 보였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의 모임인 ‘자유무역협정(FTA) 포럼’을 만들어 한미 FTA 체결을 측면 지원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6년 7월 정 전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14명은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같은 외교관 출신인 당시 한나라당 박진 의원도 동행했다. 미국 상공회의소, 무역대표부(USTR), 국무부를 방문하고 기업인과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 한미 FTA 체결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여야 의원이 함께 미국을 설득했더니 한미 FTA의 국회 비준이 될 것인지, 이행이 제대로 될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상당히 해소됐습니다. 국익 앞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이끌어 냈다는 데 보람이 있었어요.”
그런 기대와는 달리 17대 국회는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2008년 5월 17대 국회 마지막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열렸다. 회의장에 들어선 정 전 의원은 “아…” 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의원 전원(12명)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같은 당 ‘반대파’ 의원을 설득하고 통일외교통상위원장과 양당 간사를 만나 비공개 회의를 여러 차례 거치며 어렵사리 연 상임위였다. 정족수를 채울 수 없어 결국 한미 FTA 비준안의 상임위 통과는 무산됐다.
당시 정 의원은 “FTA가 국내 정치에 희생되면 안 된다”며 18대 국회가 들어서기 직전 상임위에서라도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 ‘정치적 의미’를 남기자고 주장했다. 당내 시선은 따가웠다.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한미 FTA 체결을 추진했던 통합민주당(전 열린우리당)이 비준을 오히려 반대하고 나섰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서 당내 ‘강경파’들이 힘을 얻었고 ‘FTA 비준 동의안 반대’라는 지도부 방침이 세워졌다.
무려 3년이 더 지나서야 극심한 여야 대치 끝에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이 통과됐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마무리하는 게 맞았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그는 당의 방침에 따라 한미 FTA를 통과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외교관 출신으로서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던 셈이다.
외교관 출신 국회의원의 애환
다른 관료들에 비해 외교관들의 정치인 변신은 어렵다고 한다.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지역 지지기반이 약하다. 민심을 읽으면서 표밭을 다지고 당원들과 접촉도 자주 해야 하는데 이런 친화력이 부족하다. 서양식 스탠딩 파티를 하듯 ‘우아한 정치’만 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험지 경쟁력’은 더더군다나 없다는 평가다.
심윤조 의원(새누리당)은 지역구 주민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주민들이 “신사적인데 차갑다”고 이야기하더라는 것. 정제된 언어를 쓰고, 보안 유지에 주의하도록 평생 훈련을 받았던 습관이 들었기 때문인지 소탈한 ‘정치인 언어’를 구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국회에 파견 나온 외교관 같은 기분이었어요. 현실 정치에 적응하는 데 2, 3년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심 의원은 후배 외교관들이 일찍 현실정치에 뛰어들면 좋겠다고 권한다. 외교관을 하다 보면 여야로 나뉜 싸움, 주민 민원 해결에는 생리적인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이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비례대표 한 번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역구에 기반을 두고 재선, 3선을 하며 관록을 쌓으면 정부에 있을 때보다 국익을 위해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정치인이 되기는 어렵다. 정치권에서 외교관을 영입해 키우거나, 다른 국회의원의 외교 활동을 도울 수 있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국회에 일단 들어오고 나면 외교관(출신)이 할 일은 많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자위권 차원에서 평화의 핵을 가질 때가 됐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정부가 고수해 온 ‘비핵화 정책’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외교관이었다면 펄쩍 뛸 만한 발언이었지만 심 의원은 다른 행보에 나섰다. 심 의원은 ‘핵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심 의원은 “정부는 기존 방침대로 비핵화를 견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마지막 카드를 지금부터 버린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건의했다. 이런 압박은 북핵 실험에 대한 제재에 나서는 정부가 미국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중국의 적극적인 대북 제재를 압박하는 외교를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현재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의회에서 국가 지도자와 각료가 배출되는 만큼 의원들 간 ‘네트워크’가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된다”며 “외교관이 국회에 진출해 의회 외교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교의 정치화’ 우려도 나와
외교관의 국회 진출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외교관 출신인 박진 의원(한나라당·새누리당)은 서울에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7, 18대에 걸쳐 3선 의원을 지냈다. 비례대표로는 17대 국회 정의용 의원(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 18대 국회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이 잇달아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심윤조, 김종훈 의원(새누리당)이 강남벨트에서 전략공천을 통해 당선됐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전 대사가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치에 거리를 두고 국익을 위해 사심 없이 움직여야 하는 외교관이 지나치게 정치적이 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송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뒤, 다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직행했다. 송 전 장관은 외교부 내 대표적인 ‘미국통’이었으나 청와대 근무 시절 ‘자주 외교’에 지나치게 코드를 맞추면서 대미관계를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에서 외교관이 정치에 영합할 경우 외교정책의 지속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 전직 대사는 “이미 관료들의 정치화가 심각하다. 관료들은 ‘정무적 감각이 없다’는 평가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며 “외교관까지 정치에 기웃거린다면 외교가 여론에 부합해 움직이는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어도 외교만큼은 당리당략을 떠나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럼에도 외교안보 전문가에 대한 여의도의 러브콜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 절반, 경제 절반’이라는 국회 업무에서 외교안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부터 △한중 FTA 타결 △대중·대미 관계 강화 △한일 위안부 협상 △북한 핵실험 등 폭발력 있는 외교안보 이슈가 계속되면서 국회에서 외교안보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입법 기능이 강화되면서 율사(律士)가 대거 국회에 진출했듯이 ‘외교안보통’의 여의도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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