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의 위헌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28일 첫 공개변론을 앞두고 헌법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단순 다수결’이라는 헌법상 일반 원칙에 위배된다는 평가와 여야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란 의견으로 갈렸다.
동아일보가 26일 전직 헌법재판관과 헌법학 교수들의 의견을 받아 분석한 결과에서는 신속안건 처리를 위한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 조항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하고 좁게 규정한 것이 위헌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 “합의 결렬 때 본회의 심의 기회 박탈해 위헌”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등 19명은 지난해 1월 “위헌인 국회법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원 개개인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며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문제가 된 조항은 직권상정 요건을 여야 합의나 천재지변, 국가 비상사태로 못 박은 85조 1항과 신속안건처리 요건으로 5분의 3 이상의 가중 다수결을 규정한 85조의2 제1항이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의 최대 위헌적 요소로 단순 다수결을 넘은 ‘5분의 3’ 규정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전직 헌법재판관들은 직권상정을 무력화한 조항의 위헌성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조건을 교섭단체 대표와의 ‘협의’에서 ‘합의’로 바꿨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시윤 전 감사원장은 “직권상정 조건을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만장일치’로 규정해놓고 전시 등 국가 비상사태에만 쓸 수 있게 해놓은 것은 위헌”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직 재판관은 “5분의 3 규정이 문제되고 있는 신속처리 절차는 미국에선 그 요건이 3분의 2로 더 높다. 본회의 상정을 원천봉쇄한 부분이 더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합의가 있다면 굳이 직권상정을 할 필요가 없고, 국가 비상사태의 경우 오히려 국회의장 한 사람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견제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속안건처리 지정 요건인 ‘5분의 3’ 규정에 대해선 “원칙과 예외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원칙은 단순 다수결을, 예외는 가중 다수결을 말한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헌법은 예외적으로 대통령 탄핵, 헌법 개정 등 중대한 사안에만 ‘3분의 2’ 가중 다수결을 규정하고 있는데 선진화법처럼 법률로 가중 다수결을 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신속안건처리는 예외적인 절차로 쓰여야 하는데, 일반안건처리가 교착되면서 사실상 의안 전체에 대한 원칙 규정처럼 변질됐다”고 평가했다. 5분의 3 요건 아래서는 과반수 의결 때보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표결권이 저평가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반해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가 표방하는 위원회 중심주의에 따르면 상임위와 법사위를 건너뛰는 직권상정이야말로 예외적인 제도다. 단순 다수결도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의 한 로스쿨 교수는 “직권상정이 어려워지면서 협상이 강조되고 있다. 직권상정 자체가 오히려 국회의원들의 위원회 단계에서 심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다수 횡포’ 피하려다 ‘소수 지배’ 부른 국회
청구인들은 ①국회의장의 처분이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했는지 ②그 처분이 무효인지 ③처분의 근거인 국회선진화법 조항이 위헌인지를 가려 달라고 청구하고 있다. 청구가 인용되려면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수 동의만 있으면 되지만, 마지막 쟁점은 사실상 법률의 위헌심판과 같기 때문에 6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청구인들은 국회선진화법을 ‘국회 마비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법 시행 결과 국회의 폭력사태는 사라졌지만 ‘소수’가 국회를 지배하는 초유의 상황이 도래했다. 정부 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야당 결재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4년 5월부터 9월까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로 대립했던 여야는 ‘151일간 법안처리 0건’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도 노동개혁법안 등 쟁점 법안 심의는 올스톱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정의화 국회의장은 신속안건처리 요건을 ‘과반수’로 낮춘 국회법 개정 중재안을 25일 내놨지만 이마저도 여야 합의 없이는 본회의 상정이 어려운 국회선진화법 규정 때문에 통과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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