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수위를 결정짓는 중대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은 양측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한 지 21일 만인 27일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양제츠(楊潔지) 국무위원,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두루 만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결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새로운 제재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지정학적인 이해관계와 국가 이익이라는 옛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케리 장관은 4시간이 넘도록 왕 부장과의 마라톤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북한 문제를 다시 회담의 탁자 위로 올리고 북한의 핵계획을 끝내는 목표를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두 나라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 동의했으며 빠른 시간 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서 의견 일치를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 옆에 선 왕 부장도 “양측은 북핵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이 있고 전면적인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케리 장관은 “양측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의 필요성에는 합의했으나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할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핵심 쟁점에 대해선 합의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 ‘위험하다’고 평가한 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영역에는 북-중 교역도 포함된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고 호소하듯 말하기도 했다.
토머스 섀넌 미국 국무부 정부차관 내정자도 전날 일본 도쿄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간여할 방법을 모색하겠다”며 중국을 압박했지만 허사였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일시적인 문제(一時一事)나 희로애락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보다는 김정은 정권 유지를 선택한 중국의 태도는 향후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과정에 험로를 예고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은 지금까지 만장일치로 채택돼 왔다. 미국이 제안한 강력 제재안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협조 없이는 빛을 볼 수 없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사실상 중국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입맛에 맞추다 보니 하나마나한 결의안에 그친 1, 2, 3차 핵실험 이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결연한 제재’가 있어야 한다며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다시 원래의 미온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은 북한의 핵개발에는 미국도 책임이 있으며, 가장 큰 책임을 중국에 물으려는 미국의 태도는 부당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가 27일 사설에서 “조선(북한) 핵 문제의 본질은 북-미 대결”이라며 “북한은 ‘잘못된 방식’으로 미국의 ‘부당한 군사적 압력’에 저항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도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핵 제재와 관련해 미국 등이 ‘중국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해 “그런 발언은 도리에 매우 어긋난 것이며 건설적이지도 않다”고 강하게 반박했었다.
또 중국이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반대하는 것은 미국과 일본, 한국 등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대중 압박에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분위기에 대한 반감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일 3국은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공론화하는 모양새다. 환추시보는 27일자 사설에서 “한국의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전 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한국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중한(中韓) 간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한국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제재안이 북한 정권을 위협해 대규모 난민 사태 등 인도적 재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를 중국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도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에 반대하는 이유다. 북한 핵 개발 저지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붕괴되지 않고 미국과의 완충지대로 남는 지정학적 필요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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