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의 한 예비후보는 경선을 준비하며 현역 당협위원장의 ‘벽’을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차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바로 2, 3주 전 자신의 경쟁자인 현역 당협위원장이 새로 정리된 책임당원 명단을 입수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당헌·당규상 당원 30%, 여론조사 70%로 경선이 치러지는 만큼 당원 명부 확보는 당락에 결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협위원장이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당협위원장 직을 사퇴하도록 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지난해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전제로 총선 6개월 전까지 현역 당협위원장 전원이 사퇴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무산되면서 새누리당의 결정은 없던 일이 됐다. 이 예비후보는 “우리는 아직도 경선에 참여하는 당원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며 “현역 의원들은 벌써 일목요연하게 경선에 포함될 당원을 파악해 집중 관리하고 있으니 게임 자체가 안 된다”고 항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정치개혁의 완결판”이라며 4·13총선에서 상향식 공천을 전면 도입했지만 경선을 준비하는 현장 곳곳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에 따라 당원 명부도 안심번호로 전환한 뒤 공천 신청자에게 제공하기로 했지만 당원 명부 전체를 제공할지, 책임당원 명부만 제공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강원 지역 경선에 나선 한 예비후보는 “명부를 받더라도 당원들에게 나를 알릴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며 “경선에 참여하는 책임당원이 누군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현역 의원들과 맞서기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벌써부터 지역 곳곳에선 “현역 의원을 제대로 평가해 퇴출해야 한다는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하려면 100%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예비후보들의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반면 일부 지역은 정반대의 주장도 나온다. 안대희 최고위원(서울 마포갑)과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 등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인사들과 경선을 치러야 하는 지역이 대표적이다.
현역 의원들은 “이미 김 대표 취임 이후 수차례 상향식 공천을 치르겠다고 공언해 왔다”며 “예비후보들이 미리 입당해 자신을 지지하는 책임당원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이제 와서 룰을 바꿔달라는 건 생떼쓰기”라고 지적했다.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경선 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휴대전화 위장전입이나 유령당원 모집 등 벌써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 있겠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경기 지역의 한 예비후보는 “당원, 국민 비율과 상관없이 결국 누가 얼마나 많이 여론조사에 동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여론조사 전화를 받게 되면 점조직처럼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하도록 지지자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털어놨다.
당장 공천관리위원회는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상향식 공천이 되지 않도록 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준 자체가 모호할 경우 또 다른 반발에 부닥칠 수 있다. 한 초선 의원은 “본회의, 상임위, 의원총회 출석률과 같은 기준으로 성과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비상식적)”라며 “공천 학살을 없애려다가 불공정 시비로 내부 경쟁력만 깎아먹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