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검토를 두고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이라는 고사성어로 비판했다. 초나라 항우의 사촌인 항장이 연회에서 칼춤을 춘 이유가 패공(유방)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유방(중국)을 겨누는 항우(미국) 측의 칼춤’으로 보고 있고, 한국을 미국 뜻에 따라 움직이는 항장쯤으로 낮춰 본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왕 부장은 1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함께 북핵 문제의 3원칙을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해결 반대, 중국의 안보이익 훼손 불용’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X밴드 레이더 범위가 한반도 방위 수요를 크게 넘어 아시아 대륙 한복판으로 침투해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직접적인 해를 준다”면서 한 말이다. 그가 북의 4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달 8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을 견지한다”며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고 했던 데서 세 번째를 슬쩍 바꿨다. 북의 핵 포기보다 중국의 안보 이익이 더 중요하고, 사드는 이에 배치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왕 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북측이든 남측이든 스스로 만들어도, 가져와 배치해도 안 된다”는 말로 한국의 핵개발이나 전술핵 도입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발언이다. 중국에 사드가 ‘칼춤’이면 북핵은 지켜야 할 보검(寶劍)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국 정부가 사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다. 그런데도 어제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관련국이 한반도 문제를 이용해 중국의 국가 안전 이익을 훼손하는 데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매몰돼 자국의 전략적 이해만 따지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오늘 서울에서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가 2년 8개월 만에 열린다. 중국 측이 사드 문제를 거론한다면 한국은 안보 주권 차원에서 당당히 반박해야 할 것이다. 항우와 유방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놓고 힘을 겨뤘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이다. 핵과 미사일의 칼춤은 북한이 추고 있다. 중국이 이를 외면한다면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자멸한 항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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