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적인 고립 위기에 처한 중국이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원인 제공자인 ‘혈맹’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불만을 토해냈다. 정부 당국자 발언과 관영 언론, 지식인을 총동원한 15일 하루 중국의 전방위 대외 레토릭(수사·修辭)에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불만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을 공론화한 것에 대해 “결연히 반대하며 엄중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7일 한미동맹이 사드 도입 협의 사실을 밝힌 이후 가장 강하고 구체적인 반대 언사다.
훙 대변인은 “사드의 X밴드 레이더는 한반도의 방어 수요를 훨씬 넘어서 아시아 대륙의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온다”면서 “중국의 전략적 안전이익을 직접 훼손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다른 국가의 전략적 안전이익도 훼손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는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복잡하고 민감하다”며 “관련국이 조치를 취해 현재의 긴장 국면을 완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한미가 사드 논의 공식화를 밝힌 7일 오후 3시 이후 한 시간 만인 4시에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를 중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같은 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불렀지만 5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중국 관영 언론은 미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공론화하는 빌미를 준 북한에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비판을 퍼부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15일 사설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북한 인권 유린’과 ‘염조(厭朝·조선 혐오)’ 같은 표현까지 동원해 북한을 비난했다.
이 신문은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북한을 더 이상 우호 국가로 보지 않고 중국에 부담이 되는 나라이자 ‘나쁜 이웃’으로 보고 있으며 그 비중은 60%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이런 여론은 중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중국에서 아직 ‘항미원조(抗美援朝·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참전한 것 지칭)’ 관련 전통 우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반복해 중국의 국가 이익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며 “북한 정권이 ‘인권을 유린한다’는 설까지 겹쳐 중국인의 북한에 대한 생각은 크게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의회를 앞세워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을 겨냥한 ‘대북제재 강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날부터 이틀 동안 남중국해 인근 10개국 정상을 캘리포니아 휴양지에 모아 중국 성토장을 연 것에 대한 불편함도 터져 나왔다.
천사오펑(陳紹鋒)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12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중국어판 기고문에서 “미국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경제는 중국에 기대 온 아시아 국가들의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기조를 흔들어 동아시아의 평화질서를 깨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을 추진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해 지역 내 평화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천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안미경중의 ‘이원적 구조’가 유지된 것은 미중이 갈등은 하면서도 ‘판은 깨지 않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중 양국이 안미경중의 국가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2000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1970년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14년 10조 달러(약 1경2100조 원)대로 올라서 17조4000억 달러인 미국과 격차가 좁아지는 등 경제력 차이가 줄어들자 미국의 경계심이 강화되고 있다고 천 교수는 주장했다. 실제로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라는 체계적인 대중 봉쇄의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지난해 말 이후 미국 군함이 두 차례나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한 인공섬의 12해리 이내를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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