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16일 국회 연설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돈줄을 죄기 위한 대북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의 결정판으로 대북정책 패러다임을 대전환하겠다는 뜻을 공식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체제 붕괴’까지 처음으로 거론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호’ 발사로 기념하려 한 아버지 김정일의 생일(광명성절)이었다.
박 대통령은 ‘초강력 끝장 제재’의 지속을 예고했다. ‘비핵화를 위한 압박과 대화의 균형정책’에서 ‘비핵화를 위한 초강경 압박 지속’으로 전환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유지하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비핵화에 도움을 주겠다’던 대북정책 기조를 폐기하고 ‘핵 해결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도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운데 북한이 도발하면 강하게 압박해 태도를 바꾸게 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정부 안팎에선 사실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 지원·교류협력 중단으로 봉쇄정책 시사
박 대통령은 상생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2014년 3월 드레스덴 선언, 국제기구를 통한 취약계층 대북 지원 사업 등을 일일이 언급한 뒤 “기존 방식과 선의(善意)로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교류협력을 통한 대북 접근법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김정은에게 통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선의’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얘기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적극적인 반(反) 핵-경제 병진정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 당국자는 “국제기구와 대북 지원을 위해 해오던 협의를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이 대한민국을 겨냥하고 있어 우리가 핵 문제의 1차적인 피해자라는 인식과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나아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대북 지원 22억 달러, 민간까지 더하면 30억 달러 이상이다. 이런 지원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답변했다”며 ‘퍼주기’ 지원을 겨냥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고 한 것이어서 반발이 예상된다.
○ “레짐 체인지 의도도 엿보여”
박 대통령이 천명한 봉쇄정책의 핵심 목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바뀌지 않으면 정권 교체(레짐 체인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뜻이 담겼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과의 대화, 교류협력 중단 차원을 넘어 평양의 권력을 교체하겠다는 하이 레벨 목표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도록 만들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권 번영의 과실을 북녘 땅의 주민들도 함께 누리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소식통은 “레짐 체인지를 위한 전방위 대북 심리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이념 따른 강경책이면 네오콘 실패 전철 우려”
박 대통령의 대북 압박 의지는 결연했지만 ‘끝장 제재’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로드맵, 즉 어떻게 하겠다는 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 교수는 “박 대통령이 강조한 ‘실효적 조치’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치명적인 제재가 필요하지만 그 목표가 북한 붕괴를 위한 제재가 아니라 김정은이 핵협상에 나오도록 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정통한 한 인사는 “고뇌에 찬 박 대통령의 결단이 국익이 아니라 김정은에 대한 분노, 북한 정권을 악으로 보는 반공이념에서 나온 것이라면 대화와 압박의 균형을 통한 평화통일이라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비전 자체가 흔들린 것”이라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미국 네오콘의 실패를 따라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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