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에서 ‘북한 내 여성 폭력’에 대해 증언하는 탈북민 최민경 씨(44·여)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두만강을 건너면서 살아남는다면 동료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국 의회 내 ‘북한 인권을 위한 초당적 의원그룹’(APPG)과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이번 국제대회를 22일 개최한다. 권은경 ICNK 사무국장은 “인권 문제 가운데 특히 여성 폭력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가 크다”고 말했다.
1997년과 2012년 두 차례 탈북했던 최 씨는 가장 악명 높은 전거리 교화소 여성 수감동에 최초로 수감됐다. 고난의 행군 당시 부모를 모두 잃고 중국 친척집에 가기 위해 탈북했던 최 씨는 11년간 중국에서 살다가 2008년 중국 베이징(北京) 올림픽 직전 대대적인 북송이 이뤄지면서 공안에 검거됐다. 당시 남편, 딸(당시 9세)과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 당시 중국 옌볜(延邊) 같은 동네에 살던 여성 34명이 한꺼번에 잡혀 갔다. 최 씨는 3년형을 구형받고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됐다.
남자 2000명, 여자 1000명이 함께 수감됐던 교화소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수감자들이 여성 수감동을 새로 짓는 동안 50명이 들어갈 방에 300명이 수감돼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잠을 청했다. 벼룩과 모기, 악취 등 위생은 엉망이었다. 새벽 5시부터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식사는 자갈 모래 섞인 옥수수를 끓인 죽과 멀건 소금국이 전부였다. 굶주림으로 악이 바친 수감자들은 생활총화 시간이면 서로 비판하고 매질을 했다. 최 씨는 “열병이 돌아 매일 3~4명씩 죽어 나갔다. 증상을 돌이켜 보면 그냥 독감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2010년 출소할 당시 최 씨의 몸무게는 27㎏으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믿기 힘든 현실에서 살아남은 최 씨는 “인권이야말로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가 보다 공론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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