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을 앞두고 쏟아진 복지 공약들이 그대로 시행되면 안 그래도 위태로운 국가 재정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우려의 목소리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발표한 공약의 소요 예산 규모와 각 정당이 내놓은 재원 조달책을 분석한 결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선심성 공약이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노인 70%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전액 지급’ 공약을 발표하면서 “현행보다 연간 2000억∼3000억 원만 추가로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인구 구성 변화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날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18일 보건복지부의 기초연금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소득 수준과 국민연금 가입 여부, 공무원연금 수령 여부 등에 따라 2만∼20만 원으로 차등 지급된 기초연금은 총 9조7596억 원으로 추산된다. 더민주당의 공약처럼 65세 인구의 70%인 471만1000명에게 240만 원(20만 원×12개월) 전액을 지급했다고 단순 계산하면 총액은 11조3064억 원으로 실제 지출보다 1조5000억 원 이상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노인 인구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장래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2015∼2030년 기초연금 예상 부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2030년엔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국비(기초연금 전체 예산의 75%가량)가 차등 지급 시엔 27조4280억 원이지만 전액 지급 시엔 무려 35조7030억 원으로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행대로 운영해도 재정에 큰 부담을 주게 될 기초연금 지출을 더 늘리자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라며 “노인 간에도 빈부 격차가 상당하기 때문에 차등 지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급여를 현행 통상임금의 40%(상한 100만 원)에서 100%(상한 150만 원)로 올리겠다는 더민주당의 공약에도 비판이 나왔다. 월 최저임금이 117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통상임금 100%’를 적용하면 거의 모든 신청자가 상한(150만 원)에 가깝게 육아휴직 급여를 받게 되는데, 이럴 경우 올해 기준으로 6000억 원이던 예산이 1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우려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이미 고갈 우려가 나오는 고용보험기금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섭 더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장은 “복지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을 감안해 노인·육아 복지 지출은 확대해야 한다”며 “고소득자에 대한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고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을 높이면 서민들의 체감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고도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소요 예산은 나중에 계산하겠다?’
새누리당은 굵직한 복지 공약을 내놓으면서 소요 예산을 아예 계산하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공약 예산 추계’ 자료에 따르면 4일 1차 발표한 복지 공약 8개 중 예산 추계와 재원 조달책이 둘 다 명기된 것은 ‘치매 노인·장애인 2만 명 웨어러블 통신단말기 지원’ 1개뿐이다.
2018년으로 예정돼 있던 간호간병 서비스의 확대 시기를 올해 4월로 앞당기겠다는 공약에 대해선 “사업에 참여할 병원과 환자의 수를 현재로선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며 소요 예산 추계를 생략했다.
예산은 추계했지만 재원 조달 방안이 부실한 분야도 있었다. ‘3000cc 미만 자동차 건강보험료 부과 면제’ 등 건보료 인하 공약에 대해선 연간 5854억∼9402억 원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계산했지만 재원 조달책에 대해선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을 활용하되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여 적정 수준을 투입한다”는 추상적인 내용만 있다. ‘경력단절 전업주부 국민연금 추후 납부 허용’ 등 국민연금 체계 개편 공약은 “연간 수백억 원이 소요된다”고 자체 계산하고도 재원 조달책을 아예 내놓지 않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산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로 낸 공약은 불필요한 논란만 부추길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창남 새누리당 정책국장은 “총선 전까지 5단계에 걸쳐 공약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모든 공약에 대해 구체적인 추계와 재원 조달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국민연금기금으로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임대주택을 짓는 이른바 ‘컴백홈법’을 내놓으며 “신혼부부 절반이 입주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기금이 얼마나 투입될지, 어느 분야에서 투자금을 회수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장병완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사업 규모를 정하는 대로 정확한 추계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 ‘공약에 재원 조달책 병기’ 법제화해야
전문가들은 정당 차원의 공약을 낼 땐 재원 조달책을 반드시 제시하도록 법에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연간 10조 원 규모의 복지 정책이 신설되면 2060년엔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88.8%까지로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페이고(pay-go·번 만큼 쓴다는 의미)’ 원칙을 아예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공약은 필연적으로 세금 인상 또는 다른 복지 지출의 삭감으로 이어지는 만큼 ‘무엇을 더할 것인지’보다 ‘무엇을 뺄 것인지’를 중심으로 공약을 평가해야 한다”며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어떤 지출을 줄일지’를 더 꼬치꼬치 묻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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