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발(發)’ 공천 물갈이 태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마련했던 시스템 공천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20% 컷오프’는 오래전 얘기가 됐다. 이제는 당 중진을 포함해 현역 의원 절반가량이 교체될 수 있다는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22일 “경쟁력 지수와 여론조사 평가를 종합해 3선 이상 중진 의원 50%, 재선 이하 의원 30%를 공천관리위원들의 가부(可否) 투표로 공천 배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평가 하위 20% 컷오프’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작업이다. 대부분 외부 인사로 구성된 공천관리위원회의 고강도 물갈이 방침에 이들을 임명한 김종인 대표조차 놀랐다고 한다. 탈당 의원이 속출하면서 다소 느긋했던 현역 의원들은 예상치 못한 ‘강도’와 ‘속도’에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 ‘1차 타깃’ 중진 의원, 최대 14명 공천 탈락 위기
더민주당이 밝힌 현역 물갈이의 1차 타깃은 중진 의원들이다. 현재 3선 이상 의원은 총 30명. 이 중 불출마 선언을 한 3명(김성곤 노영민 최재성 의원)을 제외하면 최대 14명이 아예 공천 심사 면접도 못 한다. 이는 “중진 의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개혁 공천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김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벌써 당내에서는 대상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접전 끝에 당선된 수도권 A 의원, 의정 활동과 지역구 관리가 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호남의 B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중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중진 의원은 “단순히 선수가 높다는 이유로 공천 배제 대상자 비율을 높인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중진들이 스스로 용퇴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의원은 “먼저 한두 명이 불출마 선언 등 용퇴하고 후배를 돕는 모습을 보여야 물갈이 효과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생명줄’을 쥔 공관위원들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공개적인 불만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하위 50%에 포함되더라도 공관위원들의 투표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일부 중진이 ‘같이 모여서 논의하자’고 했지만 공관위원들에게 찍힐까 두려워 다들 모이지도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사라진 문재인표 시스템 공천
문제는 공관위의 공천 배제 투표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민주당은 23일 선출직평가위원회의 ‘하위 20% 컷오프’ 명단을 공개한다. 여기서 살아남아도 공관위의 ‘중진 50%, 초·재선 30% 공천 배제 투표’를 다시 거쳐야 한다.
공관위는 이와 별도로 3단계 도덕성 심사까지 한다. 정 단장은 “당 윤리심판원 제소 등이 있을 경우 별도로 투표해 (공천) 배제 대상을 정하게 된다”고 했다. 막말로 제소됐던 정청래 의원 등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 관계자는 “징계 받은 사람을 제외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들은 ‘패닉’ 상태다. 일각에선 “김 대표의 속도전에 ‘악’ 소리도 못 내고 죽게 생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내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공언했던 ‘시스템 공천’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당이 안정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극약처방을 하면 국민의당만 좋아할 것”이라며 “당이 내홍에 빠져 엉망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고 했다.
한편 비례대표 4선 경력의 김 대표는 비례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단적으로 뭘 하겠다, 안 하겠다는 말을 드릴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 등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에 대해 “더민주당에 그런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종전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며 “세상이 바뀌면 당도 바뀌어야지, 무슨 일관성이 밥 먹여주는 줄 아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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