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에서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필리버스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 단독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제정으로 43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 제도가 19대 국회 들어 처음 시행된 것이다.
○ 첫 타자 김광진… “5시간씩 발언”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7시 국회에서 본회의 시작과 함께 “국회법에 따라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게 됐다. 자정이 경과해도 차수를 변경하지 않고 계속 본회의를 진행하게 된다”며 필리버스터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더민주당은 소속 의원 108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국회법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합법적인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첫 발언자로는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나섰다. 김 의원은 테러방지법안 전문을 거의 대부분 읽은 것은 물론이고 테러의 정의와 외국의 사례 등을 끊이지 않고 열거했다. 통상 법안에 대한 찬반 토론은 5분으로 제한되지만 김 의원은 이날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발언을 계속했다. 김 의원은 “8시간은 해보겠다”며 각오를 다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중간중간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다”며 법 조항을 반복해 읽거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다”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더민주당 의원들은 1인당 5시간 이상 발언을 하며 토론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 의원의 발언이 시작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을 나갔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 본관 로비 로텐더홀 계단에서 무제한토론 중지 규탄대회를 열고 “국민 안전 외면하는 야당은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당은 문병호 의원이 토론을 신청하는 등 더민주당의 필리버스터에 공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 “선거 앞두고 역풍” vs “국정원 청부입법”
앞서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필리버스터를 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이종걸 원내대표 등의 강경한 목소리에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원내대표는 “오늘 하루만 벌면 된다. (미국 대선 경선 후보인) 샌더스도 8시간 필리버스터를 했다”라며 동참을 요청했다. 은수미 의원도 “협상을 위해서라도 3, 4일 동안 필리버스터가 불가피하다”며 “나도 고문당한 얘기도 하면서 10시간 버티겠다. 다른 의원들도 7시간씩 버텨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역풍’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전병헌 의원은 “선거가 코앞인 상황에서 필리버스터를 하려면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칼자루를 꺼냈다가 소는 잡지 못하고 병아리만 잡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며 “어설프게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가 오히려 망신만 자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연습이나 훈련 없이 얘기하다 (실수라도 하면) 언론으로부터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필리버스터를 하면 상당히 파괴력 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계속 반론이 이어지자 이 원내대표는 책상을 치며 “이건 국가정보원 청부입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테러방지법 자체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대부분 의원들은 정부와 새누리당을 성토했지만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박범계 의원은 “기본적으로 국정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정보수집 권한을 국정원에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테러방지법에 동의 못한다는 것은 곤란하다”며 “참여정부도 이 법을 추진했던 만큼 대안을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백군기 의원은 “대테러센터를 국민안전처에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새누리당 안이 더 바람직하다. 총리실에 두는 게 맞다”며 “본질적으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를 생각해야지 부작용을 우려해 본질을 흐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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