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김정은도 기가 막힐 39호실 폐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1968년 1월 북한이 미국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을 때, 배 안엔 달러도 적잖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너절한 쓰레기”라면서 불태워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달러를 혐오했다. 지금이라면 노동당 39호실로 실려 갔겠지만.

오늘날 김정은의 사금고 역할을 하는 39호실은 1970년대 중반 생겨났다. 그때쯤에야 북한이 달러 맛을 안 것이다.

최초의 39호실은 달러를 벌기 위해 노동당 재정경리부의 한 개 과(課)를 따로 독립시켜 만들었다. 이때 노동당 총비서는 김일성이었기 때문에 39호실의 자금 처리 권한도 김일성에게 있었다. 매번 아버지에게서 돈 타 쓰기 불편했던 후계자 김정일은 아버지 몰래 딴 주머니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생긴 게 38호실이다.

김정일은 노동당 실권을 모두 장악한 뒤인 1986년 조직지도부가 관리하던 39호실도 손에 넣었다. 당시 39호실장과 그의 윗선이던 이성관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 비리를 저질러 발각됐는데, 이를 구실로 김정일은 39호실을 자기 서기실 산하로 귀속시켰다.

이후 38호실과 39호실은 경쟁 관계로 공생했다. 39호실은 주로 외국에서 달러를 벌어 오고, 38호실은 국내에서 호텔이나 상점, 식당 영업으로 달러를 걷었다.

2008년부터 38호실은 이권 다툼의 희생양으로 기구한 곡절을 겪었다. 그해 김정일은 대규모 검열에 이어 38호실을 39호실 산하로 소속시켰다. 2011년 38호실이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얼마 안 가 3경제위(군수경제 담당)로 넘어갔고, 장성택이 숙청된 뒤엔 또다시 39호실로 통합됐다.

하지만 39호실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은 38호실까지 통합해 산하에 70만∼80만 명을 둔 전례 없이 비대한 기관으로 커졌다. 김정은의 사금고를 위해 거의 북한군 병력과 맞먹는 외화벌이 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은행업 광업 수산업 농수산업 등 북한에서 달러가 될 만한 분야의 대다수는 39호실이 관리한다. 대북 제재를 위해 제일 필요한 일이 바로 39호실을 손금 보듯 파악하는 것이다.

이 39호실이 최근 황당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유입 자금의 70%가 39호실로 흘러들어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다. 사실 이 발언은 꼬투리 잡히기 좋은 말이라고 본다.

물론 개성공단 자금은 70%가 아니라 거의 100%가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김정은이 가진 수많은 자금원 중에 딱 개성공단의 달러가 핵 개발에 쓰였다고 단정할 증거는 제시하기 어렵다. 당장 나부터도 통장에 월급 상여금 원고료 등이 들어오는데, 저녁에 카드로 긁은 술값이 월급으로 낸 것인지, 원고료로 낸 것인지 증거를 대라면 할 말이 없다.

일주일 전 국회에서 낯 뜨거운 장면이 벌어졌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황교안 총리를 향해 “북한 39호실은 이미 4년 전에 폐쇄된 곳”이라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호통을 쳤다. “없어진 조직을 가지고 근거가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지 말라”고 김 의원이 야단칠 때 나는 너무 창피했다. 김정은이 볼까 봐….

김 의원은 합참 정보본부와 국가정보원 통일부에 확인을 했는데 “존재에 대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39호실이 존재 여부 자체가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우리가 대북 제재를 주도하려면 39호실의 움직임을 전부 파악해도 부족한데, 그 존재도 모른다면 도대체 어떻게 돈줄을 죈단 말인가.

그러나 관계 당국이 39호실의 존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암만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탈북자가 3만 명이나 한국에 들어와 있고, 내가 아는 39호실 출신 탈북자도 여럿이다. 또 숨어 사는 39호실 출신은 더 많은데 정부가 그런 답변을 했다는 건 납득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느 부처들이 김 의원에게 39호실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북한을 모르는 의원 한 명이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총리를 몰아가고, 총리는 반박도 못 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온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김정은이 그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낄낄거릴까 싶다. 이건 국격(國格)의 문제다.

김 의원이 39호실에 대해 정 궁금하면 내가 자세히 설명해 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없어진 39호실을 놓고 정부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식의 거짓 주장은 제발 당분간만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9호실이 뭘 하는지를 다룰 다음 칼럼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38호실#39호실#개성공단#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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