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 잠든 부의장
정갑윤 국회부의장(가운데)이 25일 새벽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되는 도중 의자에 머리를 댄 채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 부의장, 이석현 부의장 등 의장단은 23일부터 돌아가며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지키고 있다.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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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5시간 20분, 최민희 의원 5시간 19분, 정의당 김제남 의원 7시간 3분….’
25일 국회에선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야권연대’가 사흘째 이어졌다. 8번째 주자로 나선 더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 공약이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때 새누리당 홈페이지 접속이 마비되기도 했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본회의장 앞에서 ‘테러방지법도 못 만드는 국회’ 등의 문구가 담긴 피켓시위로 맞불을 놓았다. 국회에서 여당의 피켓시위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필리버스터 정국’의 1차 분수령은 여야가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기로 한 26일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6일 오전 (필리버스터가)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신경전은 계속됐다. 이날 오후 더민주당은 ‘26일 오전 여야 대표, 원내대표의 2+2 회동이 열린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야당의 성의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 다시 ‘노무현 카드’ 꺼내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누구의 발언인지 생각하며 들어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정보원이나 중심기관에 테러대응체제에 대한 제도적 권한을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 … 실무적으로 사전에 예방조치를 해나가는 일은 강력한 정보기관이 수행해야 한다.” 2006년 8월 17일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방문해서 한 말이었다. 원 원내대표는 또 2001년 9·11테러 당시 김대중 정부가 테러방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2003년 노무현 정부 때도 테러방지 법안을 제출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도 적극 찬성하며 협력했음을 강조했다.
‘노무현 카드’는 새누리당이 야당을 압박할 때 쓰는 단골 소재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를 요청할 때도 과거 노 전 대통령이 서비스산업 발전의 중요성을 언급한 발언을 인용했다. 여기엔 더민주당의 이중 잣대를 지적하는 동시에 내분을 유도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법무비서관을 지낸 더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23일 의원총회에서 “(테러방지 법안은) 참여정부 때 추진한 법안”이라며 처리 필요성을 언급했다.
새누리당은 이날도 야당에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이 회전목마를 탈 때는 쉬웠지만 내려올 때는 좀 어지러울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압박했다.
○ 더민주당 ‘출구전략’ 고심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온 뒤로도 더민주당이 계속 ‘필리버스터 정국’을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당은 야당 때문에 총선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며 총공세에 나설 태세다. 그럼에도 더민주당 내에서는 강경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적어도 29일 본회의까지는 무제한 토론을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층의 폭발적 호응도 ‘필리버스터 터널’을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제는 시간이 없다”며 “발언자들에게 시간제한을 요청드린다”며 26일 처리를 시사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선 “국가정보원의 감청과 정보수집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의장 중재안은 돼야 테러방지법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국정원의 감시법’ 저지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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