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총선 망치면 책임질 거냐”… 강경파 꺾은 실용행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일 03시 00분


당권-공천권 막강권한 본격 행사
필리버스터 지속 주장 이종걸 압박… 중단결정 반발에도 “괘념치 않아”
“韓日 위안부합의 고칠 여건 안돼”… 피해 할머니 만나 당론과 다른 말

‘4·13총선 비상대권’을 거머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행보가 거침없다. 김 대표는 당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탈(脫)이념-실용 노선을 가속화하고 있다. 당내 강경파와 지지층 내에서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무제한 토론) 중단 결정을 놓고 거세게 반발했지만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태도다.

김 대표의 ‘독주’는 1일 3·1절을 맞아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손잡기 정의기억재단 설립기금 전달식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지난해 말 한일 양국 간에 타결된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 “협상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가 간 협상을 했기 때문에 저희가 그 결과를 현재로서는 고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졸속 협상이라며 양국 간 합의 무효와 재협상을 촉구해온 당론과는 궤를 달리한 것이다.

반면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놓고 이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김 대표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북한궤멸론’ 발언이나 ‘햇볕정책 보완·발전’ 발언 때는 숨죽였던 친노(친노무현) 성향 야권 지지층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김 대표에게 첫 번째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 측 인사는 “김 대표가 SNS 등에서 ‘난리’를 칠 줄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SNS의 필리버스터 관련 내용을 분석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 SNS 분석 결과 테러방지법의 이른바 독소조항을 전달하거나 알리는 내용은 거의 없고 ‘누가 몇 시간을 했다’는 식의 얘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런 분석 결과를 들이밀며 지난달 29일 심야 비대위원회의에서 필리버스터 지속을 고집한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총선에서 지면 원내대표가 책임질 것이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김 대표는 ‘필리버스터에서 우리의 의사를 충분히 표시했다. 계속한다고 청와대가 양보할 뜻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이제는 선거 전략에 매진하자’고 압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최후통첩까지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1일 오전 이 원내대표가 중단 선언을 하지 않고 의원총회 뒤로 미뤘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대표에게 공천 전권을 위임한 것과 관련해 “19대 총선 때 비례대표(공천)를 잘못했다. 운동권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지 않았느냐”며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어떻게 최적으로 배분할지 (김 대표에게) 융통성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탈이념·실용적인 관점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대거 공천할 것이라는 의미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김종인#더불어민주당#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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