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관료들은 자신이 한 말이 대중이 감동받는 잠언이 되기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활시위를 떠난 말은 가시 돋친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말은 본래의 뜻과는 다른 결과를 낳을 때도 많다. 고구려 25대 평원왕은 평강공주의 울음을 멎게 하려고 “온달에게 시집보낼 것”이라고 겁을 주었으나 나중엔 이 말이 ‘왕이 식언할 참이냐’는 족쇄가 됐다. 장관의 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면 정부로서는 리스크다.
▷박근혜 정부의 첫 설화(舌禍)를 자초한 장관급 관료는 2013년 8월 세제 개편안 발표 때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으려는 취지”라고 사족을 달았던 조원동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5개월 뒤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터졌을 때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지고 걱정만 한다”고 실언을 했다. 조 전 수석은 징세 원리를 설명하려 했고, 현 전 부총리는 개인정보 제공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했다지만 국민을 가볍게 여긴 실언이었다.
▷관료 출신이 포진한 1기 경제팀과 달리 정치인 출신이 2, 3기 경제팀을 장악하면서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정치적 감언이 늘어났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2014년 7월 “현 부동산 규제가 겨울에 여름 옷 입은 격”이라고 했다. 건설경기 부양을 시사하는 달콤한 말이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올 1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자화자찬(自畵自讚)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전투적 표현을 잘 쓰지 않아 ‘순둥이’ 소리를 듣는다. 그는 어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주최로 열린 ‘1회 동아MTalk’ 행사에서 “추경은 득보다 실이 많다” “집값 급락은 없다”고 말했다. 평소와 달리 단호한 어법이었다. 그러나 이 말이 맞을지는 반년쯤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 행사 말미 유 부총리는 청년들에게 “지금 어렵겠지만 실망하지 말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했다. 별도의 원고 없이 한 이 발언은 정책설계자라기보다는 ‘순둥이’ 선배의 인생 조언처럼 들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