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갈등에 정책 뒷전… ‘대안제시’ 正道 잊지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4·13총선, 심판대에 선 한국정치]<3·끝>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이정희 △1953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미주리대 정치학박사 △한국정치학회 회장(2008년) △제16대 국회 선거구획정위원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장 △현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 ‘이익집단정치론’(2010년), ‘마음의 정치’(2005), ‘사랑의정치’(2013년) 외 다수
이정희 △1953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미주리대 정치학박사 △한국정치학회 회장(2008년) △제16대 국회 선거구획정위원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장 △현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 ‘이익집단정치론’(2010년), ‘마음의 정치’(2005), ‘사랑의정치’(2013년) 외 다수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데 꽃샘추위 때문인지 4·13총선의 꽃봉오리는 여전히 꽃 피울 채비를 못하고 있다.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건만 유권자들은 무덤덤하다. 아니 쌀쌀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야권의 분열을 보면서 선거철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아차렸고, 선거구 획정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국회의원들의 속내를 보았다. 현재 진행 중인 각 당의 후보 공천 과정은 극심한 당내 갈등과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 유권자는 안중에 없다. 유권자가 주인이어야 할 선거가 유권자를 배제한 채 치러질 때 그 선거는 의미가 없다.

유권자의 국정 심판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바탕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야당 정치권의 특권이자 전략이었다. 이승만 정부를 압박했던 민주당, 3공화국과 유신의 개발 독재, 그리고 5공 권위주의 정권을 극복한 야당 정치권 역시 유권자의 마음과 함께했다. 국정의 난맥상을 짚어내고 정책 대안과 비전 제시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야당이 할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제반 상황에 불만족스러운 유권자들에게 20대 국회에서 적절한 입법과 의정활동을 통해 얽힌 끈을 풀어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것이 야당의 몫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들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야권의 최대 지주인 더불어민주당은 영입인사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주도하는 멋쩍은 비상 상황이고, 야당을 뛰쳐나가 제3당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출범한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로 전국정당의 길이 난관에 봉착했다.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정의당 역시 야권 분열과 비례대표 의석수 감소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 것인가. 20대 국회가 여야의 균형 속에 견제와 협력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앞으로 한 달 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야당은 유권자를 중심에 놓고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 우선 19대 국회에서 잘못한 일은 국민 앞에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 많은 사안 중 어찌 잘못한 판단이 없었겠는가. 국회선진화법이 국회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으면 다음 국회에서 신중하게 수정 보완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유권자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국민들은 여당의 독주를 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분열된 야당의 모습도 원하지 않는다. 김종인 대표의 일방적인 당 통합 제의가 국민의당의 거부로 무산된 이후, 야권이 4·13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는 길은 선거연대 또는 선거공조가 대안이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 새누리당 과반의석 저지, 180석 저지, 개헌선 저지 등을 호소하며 기계적 선거연대로 방향을 잡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야당이 여당과의 정책적 대립각을 정립하지 못하고, 야당 간 정책적 연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연대와 선거공조를 도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정책 공조를 바탕으로 앞으로 20대 국회를 어떻게 꾸려가겠다는 공감대 없이 지역선거구에서 1 대 2, 1 대 3의 구도를 1 대 1의 구도로 바꾸어 보겠다는 선거 공학적 셈법으로는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야당이 새누리당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강하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공직선거정책토론회에서 정당들은 그들의 정책 비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신생 정당 국민의당이 제3의 길을 내세워 출범했으나 그 길이 어떠한 길인지 유권자에게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대표 체제의 더민주당 역시 기존의 정책 노선을 어느 정도 수정 보완했는지, 아니면 정책의 입장 변화 없이 선거를 치를지 유권자들은 알 수 없다. 정의당만이 줄곧 진보의 길을 고수하고 있는 편이다.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야당 간 주도권 쟁탈과 당 내부의 공천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정책은 뒤로 제쳐 놓은 격이니 정책 차별성 운운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급할수록 정도(正道)를 밟는 것이 좋다. 당의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새누리당과 차별화된 야권의 공동 관심사와 대안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야당과 재야가 ‘독재타도’의 구호로 손쉽게 뭉칠 수 있었지만, 민주화 시대에 들어선 이후 야권의 공조는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가능하다.

국가안보, 대북정책과 외교, 청년실업, 노인복지, 영유아 교육, 경제, 노동 등 수많은 정책 이슈가 유권자와 함께 있다. 각 영역과 부문에서 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각각 다른 정책 노선을 견지하고 있겠지만, 동시에 매우 유사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민주정치 발전은 야당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유권자를 중심에 두고 움직였을 때 그 결실이 아름다웠다. 아직 시간이 있다. 한 달 후 4·13총선의 심판대에 야당이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을지 유권자는 주시하고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4·13총선#선거#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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