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동용]진실의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6일 03시 00분


민동용 정치부 차장
민동용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포’다. ‘차르’(러시아 절대군주)라고 불리듯 공천의 전권을 손아귀에 쥐고 휘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더민주당에 이해관계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고 수틀리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공포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김 대표가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라며 떠나버리는 순간 당은 난파선이 되고 선거 결과는 최악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의원들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는 공포다.

김 대표가 친노(친노무현) 핵심인 이해찬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해도 친노 의원 한두 명이 소셜미디어에서 툴툴대는 걸로 저항은 끝났다. 김 대표가 민주노총에 찾아가 “노조가 근로자 권익 향상보다 너무 사회적인 문제에 집착한다”고 쓴소리를 해도 평소에는 민주노총 눈치를 보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경파 의원들은 조용하다. 북핵 문제나 개성공단 폐쇄 문제에 대해서도 김 대표의 주장에 토를 다는 의원은 없다. 진보를 자신의 정체성처럼 여기던 한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운동권 출신 의원은 아예 우(右)클릭이 필요하다고까지 했다. 철저한 순종이다.

공포를 바탕으로 한 김 대표의 이 같은 말과 행동은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서로 보인다. 이미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 제안을 했을 때 김 대표는 자신이 ‘외연 확장’을 맡을 테니 문 전 대표는 ‘집토끼 장악’을 맡으라고 했다.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대표가 이른바 ‘올드(old) 친노’를 컷오프해도 문 전 대표가 침묵을 지키는 한, 집토끼는 도망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즉에 파악한 것이다.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는 김 대표의 공포 리더십이 먹히는 듯하다. 문제는 총선 이후다. 100%에 가까운 생존율을 보인 ‘진문(진짜 문재인)’ 의원들과 대부분 공천에서 살아남은 86그룹 운동권 의원들이 선거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김 대표에게서 어떤 공포를 느낄까. 그들은 자신의 생존이 김 대표가 외연 확장에 힘쓴 덕이라고 생각할까. 안보 문제에서, 북핵 문제에서, 노동 문제에서, 경제 문제에서 총선 전 김 대표의 방향 설정이 옳았기 때문에 이겼다고 인식할까. 그러니까 총선 이후에도 당의 정체성은 그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믿을까. 솔직히 “글쎄올시다”다.

김 대표는 총선 이후 자신의 행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당의 다수가 반기를 들겠다고 하면 내가 여기 있겠어”라고 반문했다. 김 대표가 2012년 대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다음 달 13일 이후 자신이 살려준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 공포 리더십의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김종인#더불어민주당#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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