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격론이 벌어졌던 18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친박(친박근혜)계에 배수진을 쳤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3·15공천’에 대해선 “독재정권 때나 하는 짓”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이 주창해온 상향식 공천의 원칙을 깨고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만 골라 ‘족집게 컷오프’를 단행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김 대표의 발언을 놓고 당내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 비판을 불편해했는데 바로 그걸 연상시키는 언급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이 위원장의 공천을 ‘독재 정권’에 비유한 건 친박 패권주의로 비치고 있는 이번 공천에 정면 대응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20일 결선투표가 실시되고 있는 비박계 신성범 의원(재선·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의 지역구를 전격 방문해 신 의원을 격려했다. 이날 김 대표는 신 의원을 껴안고 함께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김 대표가 “경선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일체의 언행은 삼가겠다”고 공언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동안 김 대표는 자신의 최측근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최고위 개최를 요구했지만 김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관위에서 김 대표가 보류한 지역의 공천 심사를 재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최고위를 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김 대표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내 의원들 사이에선 “이번엔 적당히 물러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김 대표는 2014년 10월 중국 방문 당시 분권형 개헌론을 제기했다가 귀국하자마자 박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이른바 ‘상하이 개헌 회군’이었다. ‘30시간의 법칙’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 대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정국에서도 사실상 청와대의 방침을 용인했다. 당시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결국 김 대표의 리더십은 박 대통령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놨다.
그랬던 김 대표가 이번엔 ‘옥새 보이콧’과 ‘사퇴 불사’까지 외치며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박계 의원들도 김 대표의 최종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가 ‘3·15공천’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주호영 의원(3선·대구 수성을)을 공천에서 배제한 뒤 이 지역을 우선추천지역으로 정한 것이다.
한때 친박계 내부에선 주 의원을 비례대표로 공천하는 방침을 논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대표에게 저항할 명분을 없애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관위 내부에선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결국 20일 공관위는 최고위의 재의 요구를 다시 반려하고 원안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이날 공관위는 김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4명의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놓고 당내에선 공관위가 김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들에게 김 대표가 보류시켰던 지역 5곳을 최고위에서 서둘러 매듭지어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사실상 김을동 최고위원을 제외하고는 김 대표가 보류한 지역에 대해 나머지 최고위원들은 공관위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진영 의원과 강승규 임태희 전 의원처럼 보류 지역에 포함된 인사들이 당적을 옮기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김 대표로선 저항의 명분이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김 대표의 최측근들이 모두 살아남아 김 대표가 ‘회군’을 택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막판까지 공관위는 김성태 김학용 의원 등의 컷오프를 고민했지만 공천을 줬다. 김영우 김종훈 의원도 경선에서 상당히 고전했지만 살아남았다. “김무성계는 모두 살아나고 유승민계만 몰살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표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김 대표의 저항이 이어져 ‘무공천 사태’를 맞이할 경우 김 대표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21일 비공개 최고위가 공천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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