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오월동주(吳越同舟)다. 겉으로나마 유지하던 신뢰는 국민 눈에 보기에도 이미 깨졌다.”
23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대표가 당 잔류를 선언한 직후 그의 최측근인 주진형 당 정책공약단 부단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한화투자증권 사장을 지낸 주 부단장은 김 대표의 외부 인사 영입 1호로 불린다. 김 대표는 그에 대해 “그런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더민주의 종전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주 부단장의 글은 사실상 김 대표의 더민주당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논란이 일자 주 부단장은 30여 분 만에 글을 삭제했다.
○ “선명성 경쟁만… 이겨야겠다는 결기 안 보여”
“왜 더민주 지지율은 20%에 고착돼 있을까.”
이 물음을 스스로 던진 주 부단장은 “(더민주당은) 계급적 기반이 뚜렷하지 않아 내부 분열이 상시적으로 일어나 이제는 고질화됐다”며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이념에 사로잡혀 실현 불가능한 정책공약을 남발해 국민은 무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도 이날 “아직도 더민주당은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주 부단장은 “한마디로 국민들은 이들(더민주당)을 수권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 주류 세력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다. 그는 “더민주당은 호남의 지지 세력, 비영남권 운동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로 대표되는 진보적 네티즌 세력이 연대한 정당”이라며 “수구적 진보와 개혁적 진보가 뒤섞여 있지만 수구적 진보가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구적 진보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며 “그런데 이들은 전체 노동자의 10%도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최소 국회의원 의석은 100석은 할 테니 그중에 한자리 차지하고 즐기면 된다. 귀족 운동권이 탄생한다”며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투표하면 40%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겨야겠다는 기백과 결기가 안 보인다”고도 했다. 주 부단장은 “시대착오적인 수구적 보수를 비판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열광하는 지지층은 일부다. 김광진 씨가 필리버스터로 일약 스타가 된 것 같지만 당내 경선에서도 졌다”고 했다.
○ “불안한 동거가 다시 시작됐다”
김 대표는 이날 당 잔류를 선언하며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당의 기본적인 나아갈 방향을 정상화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가 당 중앙위원회에서 친노(친노무현)·86그룹에 의해 뒤집히고, 비대위에서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을 수시로 변경한 것에 격분해 전날 오후만 해도 사퇴할 생각이었다. 주 부단장은 “(김 대표가) 속이 틀어졌지만 수술을 하기 위해 일단 참기로 했다”며 “(주류 측은) 수술 대신 화장을 원한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데, 수술을 하려고 드니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고도 했다.
김 대표의 당 잔류로 “갈등이 봉합됐다”는 당 일각의 시각도 일축했다. 그는 “여전히 오월동주다. 불안한 동거는 다시 시작된다”고 했다. 이어 “수술이 될지는 두고 보면 안다”며 “(당은) 앞으로 2년 동안 수술을 안 하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계산과 그냥 수술이 싫은 정서적 미련 사이에서 한동안 오락가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총선 이후 2차 충돌 예고
친노 진영 한 인사는 “이번 파문에서 김 대표가 얻은 것은 ‘비례 2번’과 ‘고집불통’ 이미지뿐”이라며 “총선 이후에도 김 대표가 당 장악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 대표가 이날 중앙위 투표에 의한 비례대표 명단을 승인하면서 친노·86그룹은 비례대표 공천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뒀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중앙위가 결정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정당 민주주의의 혁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한 당직자는 “모든 당의 구성원이 ‘김 대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점은 총선 후에 쉽게 김 대표를 ‘팽(烹)’시킬 수 없게 만든 보험의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 자리를 확보함으로써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일시 투항’한 친노·86그룹과, 대선까지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김 대표와의 갈등은 총선 이후 재차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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