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김무성과 김종인 ‘주저앉은 자의 슬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김종인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5번째 비례대표 의원이 될까? 정치는 생물이라 확언할 순 없지만, 난 될 것으로 본다.” 4일자 본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종인은 1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취임할 때부터 “내 (한국) 나이가 77세”라며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신을 2번으로 ‘셀프 공천’하기 5일 전인 16일에도 “나는 비례대표를 4번 해봤다”며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킹과 킹메이커 차원 달라


내가 김종인이 비례대표 의원을 할 것이라고 쓴 이유는 그와 인터뷰하면서 설혹 더민주당의 친노·운동권 체질을 못 바꿔도, 총선 후 ‘킹 메이커’가 되지 못해도 금배지를 달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보다 건강하며 ‘감(感)’과 기억력이 좋다. ‘김종인 등장의 최대 수혜자가 반기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2)이 대선에 출마하면 불거질 수 있는 고령 이슈를 네 살 많은 김 대표가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종인에게선 아직도 정치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는 ‘언제라도 내가 떠나면 그만’이란 말을 입에 달곤 했지만, 그런 인생철학을 가진 사람이 박정희 정권부터 좌우의 강을 세 번이나 넘나들며 5번이나 비례대표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가 20대 총선판의 유일한 스타로 뜨면서 ‘오버’한 것이다. 언론 인터뷰나 사석에서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야 킹메이커라도 해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국민이 킹과 킹메이커를 보는 눈은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킹이 되려면 살아온 이력이 스토리가 돼야 한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와 뇌물죄 유죄 판결 이력으론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한편 김무성을 보면 이런 우스개가 떠오른다. ‘A: 내 몸에 털끝이라도 손대기만 해봐!→B: (한 방 때린다)→A: 한 번만 더 손대기만 해봐!→B: (마구 때린다)→A: 다시 또 손대기만 해봐!→B: ㅎㅎ….’

‘상향식 공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상향식 공천 원칙에 위배되는 △단수·우선 추천 △컷오프(공천 배제) △여론조사 100% 적용 등을 발표할 때마다 발끈했지만 다 양보했다. 그 대가로 김무성계와 부산 의원들을 살렸고 비례대표 몇 자리도 챙겼다. 양보는 자신을 버릴 때 울림이 있다. 그가 19대 공천에 탈락하고도 당에 남아 백의종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그런 울림이 있었다. 제 몫을 챙기려는 양보는 정치적으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비박 학살’ 대표 걸었어야


김무성은 적어도 ‘3·15 비박(비박근혜) 학살’ 때는 대표직을 걸었어야 했다. 당 대표란 사람이 산하기구 장(長)인 이 위원장으로부터 “바보 같은 소리”라는 극언을 듣고도 자리를 지켰다. 김무성의 정치적 스승 김영삼(YS)은 1990년 ‘3당 합당’의 이면합의인 내각제 합의문서가 공개되자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에 내려가 칩거했다.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정치상황을 반전시켰다. 김 대표가 총선 후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을 꿈꾼다면 돌아볼 대목이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를 패러디해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유행했다. 한 번 더 비틀어 보면 ‘살아남았다고 강한 자는 아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김무성#김종인#더불어민주당#총선#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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