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무회의와 국회에서… 본격토론 없이 통과한 성매매법
헌재에서 뜨거운 이슈화… 국제 인권단체 국제사면위
성매매 여성의 위험 막기 위해… 非범죄화 권유
생계형 성매매가 무죄라면… 고객은 처벌하나?
사치를 위한 매춘은?… 끝없는 법리논쟁
사법부에는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과거에는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법관들이 많았다. 그러나 재판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소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법관이 이해당사자와 소통을 안하고 국민을 납득시키지 않고서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재판의 신뢰를 높이기는 어렵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편협)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2013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올 3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참석해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한 것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민주화의 열매로 설립된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사례로 자리 잡았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편협 세미나에 나온 박 헌재소장은 헌법의 소중한 가치가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는 사건 중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세 법은 국회선진화법, 이른바 김영란법, 그리고 성매매특별법이다. 국회선진화법과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편협 세미나 중에 질문 답변이 있었으나 성매매특별법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세미나가 끝나고 식사 자리에서 박 헌재소장은 질문을 받고 “성매매를 한 사람을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하는 규정의 위헌 여부가 뜨거운 쟁점이 돼 있다”고 말했다. 위헌제청을 한 성매매 여성의 변호인은 “성매매특별법이 성적 자기결정권,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생활권을 침해한다”고 변론해 헌재의 판단이 주목된다.
2002년 한 집창촌에서 성매매 여성 14명이 쇠창살 안에 감금된 상태에서 화재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과 착취에 대한 분노가 들끓으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지은희 여성부 장관과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성매매특별법이 추진됐다. 고건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지 장관이 성매매특별법안을 상정하자 국무위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고 총리는 “생각을 다듬어 오라”며 다음번 국무회의로 의결을 미뤘다. 다음번 국무회의에서도 남성 국무위원들이 입을 다문 가운데 이 법안은 통과됐다. 그때 국무회의와 국회에서 못했던 논의를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유신과 5공화국 때 한국의 정치범 석방과 고문 금지를 요구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응원한 단체다. 이 단체는 작년 8월 전 세계 60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대의원총회에서 성매매의 비(非)범죄화를 권유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성매매가 음성화할 경우 성매매 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될 위험성이 커진다는 이유였다. 국제사면위는 ‘오랜 논의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성매매 종사자들의 위험을 줄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면적인 비범죄화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로 불리는 성매매에 관한 법률은 나라마다 다르다. 중동의 이슬람국가에서 성매매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에서는 합법이다. 영국에서는 성의 매매는 합법이지만 매춘업소와 알선업자는 처벌받는다. 처벌법은 있지만 실제 집행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유의사에 따른 성인 남녀의 성매매는 노동계약’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성매매의 비범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매매가 취약한 여성의 인신매매를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인신매매나 감금, 아동학대는 다른 법률로도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논지다. 성매매를 처벌한다고 성매매가 자취를 감추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네바다 주를 제외하고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성매매 비즈니스의 연간 매출이 140억 달러에 이른다는 추계다.
생계형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면 샤넬 핸드백을 사려고 성을 파는 여성은 처벌해야 하는가. 생계형 성매매는 그대로 놔두고 그 여성의 생계에 일조하는 고객이나 매춘업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형평에 맞는가. 법리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최근 해외출장길에 비행기 안에서 타임킬링으로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 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는 대목이 와 닿았다.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에 존재하는 비애를 들여다본 헌법재판관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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