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에 내건 대통령 사진인 ‘존영(尊影)’은 김대중(DJ) 대통령 때부터 사라졌다. ‘존영’을 검색어로 치면 ‘단군 존영’ ‘왕의 존영’ 같은 말이 뜬다. 20대 대학생에게 “아느냐”고 물으니 “‘최고 존엄’과 비슷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만큼 생소한 데다 권위주의 뉘앙스를 풍긴다.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4월 26일 새벽,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제목의 긴 산문시에서 꽃이 지듯 숨져간 젊은 학생들을 애도하며 자유당 이승만 독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최근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 주호영 권은희 류성걸 의원에게 공문을 보내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대통령 존영을 29일까지 돌려 달라”고 독촉했다. ‘진박(眞朴)’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는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간 사람들이 존영을 보물처럼 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한술 더 떴다. 헌법을 전공한 전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지 않아 쓴웃음만 나온다.
▷지역 여당 당원들 사이에도 “그만큼 친박 후보들이 자신감이 없는 거냐”며 “치졸하다”는 냉소가 쏟아졌다. 친박계 핵심으로 탈당한 윤상현 의원(인천 남을)은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쇄한 초대형 펼침막을 선거사무소 벽에 내걸었다. 음주 막말로 퇴출된 그가 대통령을 내세우지 않는 게 진정한 예의이자 여당을 돕는 길일 텐데 새누리당 내에서 여기엔 별말이 없는 것도 딱해 보인다.
▷청와대 대변인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만 했다. 민망했던 걸까. 아니면 대통령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조바심을 내는 걸까. 대통령 사진은 국가와 행정부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다. 내쫓기듯 당을 나온 사람들이 대통령 사진을 바로 내리면 오히려 불경이라는 뒷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패한 ‘유승민 죽이기’에 ‘옥새 파동’까지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흉흉한 대구 민심이 ‘존영 반납’ 독촉으로 더욱 들끓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구 유권자들을 졸(卒)로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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