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진원지인 대구의 민심은 혼돈 그 자체였다. 4·13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점심시간. 대구 동구 신암동의 한 기사식당 밥상 위엔 김치찌개가 올라 있었지만 택시기사들은 ‘공천 메뉴’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새누리당은 대구가 우스운가배(가봐)? 막 후보를 아무 데나 넣었다 뺐다 하데. 이번엔 콱 1번(새누리당) 안 찍어뿐다(안 찍는다).”(택시기사 임천모 씨·54)
“뭐라카노! 우리가 새누리당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주노.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가 만든 거 아인교(아닙니까)!”(택시기사 김모 씨·60)
○ 동갑, 경북고 동기생끼리 외나무다리 혈투
밥상머리 논쟁은 공천 파동에서 자연스레 진박(진짜 친박) 후보와 무소속 현역 의원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대구 동갑 선거 얘기로 흘렀다. 새누리당 정종섭 후보는 경선 없이 단수 공천을 받았다. 당의 컷오프(공천 배제)에 반발한 류성걸 후보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섰다. 둘은 경북고 57회 동기 동창생이다.
임 씨는 “류 후보를 한 번 더 찍어줘야 새누리당이 주민들 무서운 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씨는 “그래도 박 대통령이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시켜준 사람인데 대구에서 대통령을 배신해선 안 된다”며 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역 민심만큼이나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30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선 류 후보(38.4%)와 정 후보(37.7%)가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29일 SBS 여론조사 역시 정 후보(36.5%)와 류 후보(33.6%)가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촌동에서 만난 정호섭 씨(38)는 “박 대통령이 이번엔 (공천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새누리당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효목동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최모 씨(59·여)는 “대통령이 공천한 것도 아닌데 왜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새누리당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날 오전 정 후보는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입구에서 지역 노인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열었다. 그는 “박 대통령을 복사기에 넣어 복사하면 나와 똑같다”며 자신이 진박임을 거듭 강조했다. 류 후보는 비슷한 시간 대구 동구 불로동 금호강 둔치에서 유승민(동을) 권은희 후보(북갑)와 합동 출정식을 열고 “(당의 잘못된 공천으로) 대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대구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 수성을, 유일한 여성 후보 대(對) 3선 무소속
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막판까지 공천 여부를 놓고 마음을 졸였던 이인선 후보는 수성을에서 3선을 한 주호영 후보와 맞대결을 펼쳐야 한다. 이 후보는 대구 지역의 유일한 새누리당 여성 후보다. 새누리당으로선 수성을을 무소속 후보에게 내줄 경우 대구 시민들로부터 “공천이 잘못됐다”는 심판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고민이 크다.
영남일보와 대구MBC의 지난달 30일 여론조사에선 주 후보가 39.5%의 지지를 받아 이 후보(31.3%)를 앞섰지만 주 후보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은 대구의 보수적인 표심이 선거 당일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대구의 강남’이라 불릴 정도로 전통적인 새누리당 지지층이 많이 사는 곳으로 꼽힌다. 선거 당일 새누리당 후보에게 ‘묻지마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선 ‘낙하산 공천’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렸다. 이 후보가 원래 중-남에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가 지역구를 옮겨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성구 중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함영식 씨(58)는 “원래 수성을에 나오려던 사람도 아닌데 공천해놓고 찍어 달라고 하는 건 문제”라며 “차라리 주 후보가 4선 의원이 돼 지역 발전을 이끄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새 인물을 기대하는 민심도 있었다. 수성구 상동에 사는 주부 백모 씨(37)는 “12년 동안 같은 국회의원이 있었는데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며 “차라리 정치 신인이 들어와 열정적으로 일해 지역을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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