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퉁명스러웠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A 의원의 보좌관 B가 그랬다. A 의원이 4·13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의정 활동을 접었다고 했다. A를 보좌하던 B는 당장 먹고살 길을 걱정하는 처지란다. 일 이야기를 꺼내려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수화기를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과연 미안해야 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정치인이 선거에 죽고 산다지만 19대 국회가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4·13총선이 끝나도 5월 30일 20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까지 19대의 마지막 임시국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5월까지는 국민 세금에서 이들에게 세비가 지급된다. 19대 의원들이 조기 폐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4월과 5월 임시국회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민생 법안이 적지 않다. 여야의 의견 대립이 상대적으로 적으면서 국민 삶을 위해 시급한 보건, 복지, 노동 법안들이 대표적이다.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의료인을 엄벌하고 중대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있는 의료인의 자격을 정지 및 취소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주사기법)은 통과가 가장 시급한 사안이다. 19대 국회의 태업 속에 이 법안이 좌절된다면 다나의원 사태같이 몰상식한 의사의 비윤리적 행위가 발생해도 처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한동안 지켜만 봐야 한다.
사망 또는 중상해를 입어 의료분쟁제도를 신청했을 때 의료인의 동의 없이도 자동으로 조정이 시작되게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신해철법)도 처리가 시급하다. 현재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인이 거부하면 조정은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경찰이 출동조차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답답함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실업 기간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실업크레디트 관련 내용을 포함한 고용보험법도 마찬가지다. 현재 여야 대립이 심한 노동개혁법안과 묶여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데, 분리해서라도 먼저 처리해야 할 법으로 손꼽힌다.
19대 총선이 끝나고 열린 2012년 5월 18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선 의미 있는 진전이 적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상비약을 살 수 있게 허용한 약사법 개정안 통과가 대표적이다. 만약 이 법안이 폐기됐다면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을 경우 간단한 상비약조차 구할 수 없는 불편함이 지금까지 지속됐을지 모를 일이다.
국민은 19대 국회에 끝내기 홈런 같은 반전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9회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해 별세한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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