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놓고 결국 정면충돌했다. 특히 시 주석은 한미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2월 7일)를 계기로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사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워싱턴컨벤션센터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양국 정상회담을 열고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배치하는 데 단호히 반대한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국가 안보와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에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담에 배석한 정쩌광(鄭澤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어 “사드 배치는 남에게도 손해고 자신에게도 불리하다(損人不利己)”고 강조한 뒤 “(동북아 역내) 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는 그 어떤 언행도 피해야 하며 다른 국가의 안전 이익과 지역의 전략적 균형에 영향을 주는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정 부부장은 덧붙였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해 뭐라고 언급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사드는 북한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 체계라는 점을 강조했을 것이라고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은 전했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댄 크리텐브링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날 회담 직전 브리핑에서 “사드는 방어적 무기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용도이며 중국이든 러시아든 다른 나라를 겨냥하는 게 아니다”며 미국의 기존 견해를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이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놓고 면전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지난달 초 중국이 유엔의 대북제재 이행에 협조하면서 한미가 사드 배치 논의를 당분간 유보하는 모종의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관측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미중 정상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중국해 이슈에 대해서도 날선 의견을 주고받았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공 섬 건설과 군사화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어겼다고 주장해 왔다.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중국은 남중국해의 주권과 권리를 단호하게 수호할 것”이라며 “중국은 각국이 국제법에 근거해 항행·비행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존중하고 보호하겠지만 동시에 항행의 자유를 빌미로 중국의 국가 주권과 안전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 섬과 군사 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재차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에도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상 통로 중 하나”라고 밝혀 이 문제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9월에 이어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두 정상은 북한의 핵 및 장거리 미사일 도발과 유엔 대북제재 이행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의견을 함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보다 더욱 심각해진 북한 핵 개발 상황을 강조했고, 시 주석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해결을 위한 ‘평화협정’ 논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 전 모두 발언에서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나와 시 주석 모두에게 매우 엄중한 일이며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유엔 대북제재의 완전한 이행이라는 목표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양국이 유엔 대북 결의를 완전하고 엄격하게 집행할 것을 주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의 해결을 지지한다”며 평화협정-비핵화 협상 동시 논의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 성명을 채택하고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핵 안보를 증진하고 국제 비확산 체제를 지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핵 이슈는 공동 성명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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