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총선 후보를 보면 떠오르는 낱말이 있다. ‘주책바가지’다. 주책없는 사람을 놀릴 때 쓴다. 너무 심한가. 이들은 복지 천국을 주장하다가도 경제 악화엔 너나없이 ‘네 탓’이라고 우기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병역 면제자(16.9%)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주책바가지의 ‘주책’은 한자어 ‘주착(主着)’이 변한 말이다. ‘초생달’이 ‘초승달’로 바뀐 것처럼 주책은 이제 고유어처럼 쓰이고 있다. 주착은 본래 ‘줏대가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 흔들림이 없다’란 뜻. 지금은 아는 이도, 쓰는 이도 별로 없다.
‘주책없다’, ‘주책이다’. 언중은 두 말을 모두 쓴다. 반대되는 말을 똑같은 뜻으로 쓰고 있으니 하나만 표준어일 터. ‘주책없다’가 맞는 말이다. 많은 이가 “그 사람 참 주책이야”라는 식으로도 쓰지만 틀린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우연하다’와 ‘우연찮다’,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를 보면 답을 얻을 듯싶다. 두 낱말군은 글꼴로 보면 반대지만 같은 의미로 쓰고 있고, 둘 다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언중의 말 씀씀이가 단어의 뜻을 바꿔 버린 것이다.
‘주책이다’ ‘주책떨다’도 언젠가는 ‘주책없다’와 같은 뜻이 될지 모른다. 물론 언중이 지금처럼 ‘주책이다’를 많이 써야 하지만…. 표준어 여부와 상관없이 ‘주책이다’를 많이 쓰는 이유는 ‘주’자를 술 주(酒)자와 연관시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연상하기 때문은 아닌지.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그 후보 밥맛이야”가 그렇다. 이때 ‘밥맛’은 어떤 맛일까. ‘밥맛’은 ‘밥의 맛’, ‘밥 등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가리킨다. ‘밥맛이 없다’고 떼어 쓰면 ‘음식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란 뜻. 그럼, ‘밥맛없다’라고 붙여 쓰면? ‘아니꼽고 기가 차서 정이 떨어지거나 상대하기가 싫다는’ 전혀 새로운 뜻이 된다.
언중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밥맛이야’라고 부정어를 떼어버리고도 부정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싸가지 없는 사람’을 ‘걔 싸가지야’라고 하듯. 물론 ‘밥맛이야’ ‘주책이야’ ‘싸가지야’처럼 부정어를 생략한 어법은 아직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투표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주책바가지’와 ‘밥맛없는’ 후보가 많긴 하지만 그걸 가려내는 게 또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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