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기 한 달쯤 전이니 지난해 11월의 일이었다. 안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당시 대표)는 분열이냐, 분당이냐를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중재 노력을 하던 한 의원은 두 사람을 각각 만난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의원은 먼저 안 대표를 만났다. 안 대표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문 대표에 대한 저의 신뢰는 제로(0)입니다.” 뒤이어 문 전 대표를 만났다. 그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제가 안 대표와 만나서 생기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미 두 사람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것이다. 이후 벌어진 일들은 후일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두 사람이 몇 차례 회동을 한 뒤에 서로 밝힌 내용들이 달랐다. 그러자 당내에서는 ‘화성에서 온 문재인, 금성에서 온 안철수’라는 말이 돌았다. 두 사람이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같은 당에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4·13총선이 중반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야권 유력 대선 주자인 두 사람의 이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야권 후보단일화를 줄곧 주장했고, 안 대표는 지역별 후보 개인의 단일화는 막지 않겠다는 원칙만 강조했다. “그러게 나간다고 할 때 좀 더 매달렸어야지…”라는 문 전 대표에 대한 탄식과 “대선 바라보고 나간 사람이 총선 신경 쓰겠어”라는 안 대표에 대한 푸념이 야권 내에서 교차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야권 통합을 고귀한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했을 때 야권 패배의 책임을 안 대표에게 돌리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야권 통합이 집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은 아니다.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한 1997년과 2002년을 상기해 보자. 다른 여러 승인이 있었겠지만 공통점은 야권 통합이 아니라 이종교배로 승리했다는 점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자유민주연합과 DJP 연합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두 번 모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대선을 완주했다.
좀 거칠게 일반화를 하자면 야권은 이질적인 세력과 합쳐야만 대선 승리를 보장받았다. 동종교배로는 2012년 문 전 대표가 얻은 1469만 표가 최대치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총선이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 야권이면서 야권 성향이 도드라지지 않은 세력은 안 대표의 국민의당이다. 과거의 예를 따른다면 야권의 2017년 승리를 위해서는 국민의당이 더 이질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6일 안 대표를 겨냥해 “DJ가 아니라 JP의 길을 도모하고 있다”며 비아냥댄 친문(친문재인) 인사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다. DJ 대통령은 JP가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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