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해 왔다”며 “북한과의 불가침 조약 또한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이 비핵화를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과 통일 등 모든 사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북이 주장해 온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대화’와는 거리가 멀다.
케리 장관의 발언은 다음 주 이수용 북한 외무상의 뉴욕 방문이 임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북-미 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외무상은 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지속개발가능 고위급 토론 참석을 추진 중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북 고위급 인사의 첫 외교 행보다.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대북제재 압박에 북한이 대화 쪽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모든 것은 북한에 달렸으며,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응하겠다는 결정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선(先)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2270호)에 담지 못한 조치도 이행할 수 있다”고 밝혀 미국이 독자적인 대북제재의 강도를 높일 수 있음을 경고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채찍과 당근의 병행이다. G7 외교장관들도 회의 때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그동안 미국은 핵 활동 동결과 과거 핵 활동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신고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북은 4차 핵실험 이후 협상과 대화를 말하면서 뒤로는 도발을 준비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으나 지금 김정은 체제는 체제 내 엘리트 상층부까지 심각한 동요와 균열 현상이 일고 있다. 북이 진정으로 “협상만이 근본 해결책”(북한 담화)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저 없이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어제 “한미 양국은 북한과의 어떤 대화에 있어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일관된 입장”이라고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미국이 대화국면 전환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을 흘려들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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