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은 역대 어느 총선보다 정치적 의미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에 따라 정치지형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은 이명박, 박근혜라는 인물 중심으로 치러진 18, 19대 총선과는 달리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무소속 유승민 의원 등을 필두로 한 다극(多極) 체제로 출발했다. 이들의 승패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는 총선 이후 정국의 주요 포인트를 짚어본다. 》 ○ 1. 새누리, 야권분열 호재에도 과반 달성 실패하면? 공천 책임론 놓고 계파 갈등… 레임덕 가속
① 과반 성공땐 대선주자 경쟁 돌입
새누리당이 4·13총선에서 과반 의석(151석)을 확보하면 차기 당권 및 대권 후보 경쟁 체제로 급속히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한 계파 재편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옥새 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대표와 비박(비박근혜)계를 압박해 차기 당권 경쟁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김 대표는 대선주자 행보를 이어가며 당내 지지 기반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계파 간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문제는 과반 미달이다. 이 경우 박근혜 정부의 조기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라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총선에서 패한 책임론을 놓고 “친박계의 무리한 공천 때문이다” “김 대표의 옥새 파동 때문이다”를 놓고 공천 전쟁 때보다 더 큰 파열음을 낼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한 여권 성향의 무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는 동시에 새누리당이 과반 이하인 145석 안팎을 확보하는 경우다. 앞서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내가 있는 한 (유승민 의원 등) 무소속 후보의 복당은 절대 안 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의 복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복당 문제라는 뜨거운 감자가 향후 계파 간 당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당대회와 더 나아가 차기 대권 후보 경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당장 다음 달 초순 치러질 새 원내대표 경선부터 계파 간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예상된다. ○ 2. 與텃밭 영남서 무소속-野후보 선전하면? 유승민 등 복당여부 ‘여권 세력 재편’ 불씨로
② 공천파동 대구 ‘태풍의 눈’ 부상
새누리당의 잠재적 위협 요소는 영남권에 대거 포진한 무소속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다. 4년 전 19대 총선에서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을 통틀어 67석 가운데 63석을 얻어 사실상 싹쓸이에 성공했던 기류와는 분명 달라졌다. 20대 총선에선 선거구 획정으로 2석 줄어든 65석 가운데 50석 정도밖에 건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새누리당의 ‘심장’인 대구에서만 무소속 후보가 최소 2명 이상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누리당 무(無)공천 지역인 유승민 후보(대구 동을)의 무혈입성 가능성이 가장 높다. 여기에 더해 주호영(대구 수성을), 류성걸 후보(대구 동갑)까지 당선될 경우 여권 내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으로선 일부 야권 후보의 선전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대구 수성갑), 무소속 홍의락 후보(대구 북을)의 당선 가능성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18, 19대 총선에서 여권이 12석을 모두 석권했던 대구에서 ‘반타작’에 그칠 경우 영남권 지각변동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천에서 컷오프(공천 배제) 된 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태환(경북 구미을) 강길부 후보(울산 울주), 여성우선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박승호 후보(경북 포항북), 옛 통합진보당 출신 윤종오(울산 북) 김종훈 후보(울산 동)의 원내 진입 여부도 주목 대상이다. 이 지역은 모두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승리한 곳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에서 야권·무소속 후보가 어느 정도 당선될지는 남은 국정 동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 3. 호남의 ‘전략적 투표’가 야권 적통 결정했는데… 더민주 ‘야권의 심장’ 뺏기면 대선도 타격
③ 의석수 적어도 ‘상징성’ 무시못해
“호남은 단 한 번도 표를 나눠 준 적이 없다.”
대통령 5년 단임제 개헌이 이뤄진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호남은 이른바 ‘전략적 투표’를 통해 야권의 적통을 결정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이탈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든 열린우리당은 광주 7석, 전남·북 18석 등 25석을 확보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대체하는 정당이 됐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전남에서 5석을 얻는 데 그쳐 이후 결국 소멸했다.
이번 총선도 호남에서는 2004년의 재판(再版)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호남 28석 가운데 국민의당은 20석 안팎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승할 경우 야권 내 주도권 싸움에서 국민의당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4년과는 달리 전국 차원이 아닌 호남에 한정된 야당 교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호남판 자민련’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다만 정치적 위상은 당시 ‘자민련’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1년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호남의 지지는 야권 주자에겐 절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당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 기간에 두 차례나 호남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호남의 지지가 없으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번 총선은 물론이고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더민주당 관계자는 “더민주당이 의석수가 더 많다고 해도 국민의당이 호남이라는 전략적 고지를 차지할 경우 야권 내 주도권 싸움에서 불리할 수 있다”며 “결국 다시 야권 통합 논의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4. 국민의당 교섭단체 무난… 20년만에 3당 체제 → 캐스팅보트 쥐고 ‘쟁점법안 심판자’ 역할
④ 대선 다가오면 야권통합론 재점화
이변이 없는 한 20대 국회는 3당 체제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각 당이 자체 분석한 판세에 따르면 국민의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석은 무난히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연합이 충청을 석권했던 1996년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에 선거를 통한 3당 체제가 탄생하는 셈이다. 3당 체제가 구축되면 거대 양당의 일상적인 강경 대치로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얻은 19대 국회와 달리 20대 국회는 좀 더 원활한 의사 진행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쥘 국민의당은 ‘중재자’라는 역할을 넘어 ‘심판자’ 역할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의석수를 뛰어넘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 여당이 반드시 통과시키려 하는 노동개혁법 등 각종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국민의당의 태도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무력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한층 더 처리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0대 국회가 3당 체제로 출발하더라도 대선이 채 2년도 남지 않은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국민의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야권 통합론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당의 사실상 오너인 안철수 대표는 ‘3당 정립 체제’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한 만큼 후보 단일화를 넘어서는 당 대 당 통합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 경우 호남 현역 의원 중 일부가 당을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송찬욱 채널A기자 song@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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